레퓨테이션: 명예 2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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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가, 하원의원으로 산다는 것의 이면. 염산 테러에 대비해 책상에 물을 챙겨놓는 것. 지역구민들을 만나기 전에 칼을 소지한 사람은 없는지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것, 손이 닿는 범위 내에 항상 비상 버튼을 두는 것, 현관에 추가 잠금장치가 필요한 것, 자전거로 퇴근할 때면 내 몸에 퍼지는 두려움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 미행당할까 봐 늘 겁에 질려 있는 것... 이 모든 것 중에 정상적인 구석은 조금도 없었다.          p.108


전편에서 엠마는 자신의 지하 주방에 한 남성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성은 의식이 없었고, 가파른 계단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였다.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그 남성은 저널리스트인 마이크 스톡스로 평소 엠마와 잘 아는 사이였고, 신뢰하는 동료이기도 했다. 사실 마이크는 '우리 집에서 만나요. 4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엠마로부터 받았는데, 엠마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의 문자였다. 누군가 그녀인 척 가장해서 문자를 보낸 것이 분명한데, 상황은 점점 엠마에게 불리해져가고 있었고, 결국 그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엠마가 쌓아온 명예는 산산조각 나버린다. 찰나의 부주의로, 누가 슬쩍 한번 쿡 찌른 것으로. 엠마는 일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인기와 성공을 모두 거머쥔 여자였고, 늘 청중의 박스갈채와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명예가 산산조각 나는 게 어떤 것인지 배우는 중이다. 여러 신문에서 재판 시작 소식을 대문짝만하게 알렸고, 헤드라인들은 잔인했다. '하원의원이 연인을 밀어 사망에 이르게 하다, 하원의원이 999에 신고 못 해, 하원의원이 연인의 죽음을 두고 거짓 진술.' 등등 자극적인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직 교사이자 4년차 하원의원, 남편과 이혼 후 10대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워킹맘으로 일주일에 6일을 열여섯 시간씩 일했던 엠마는 대체 뭘 잘못한 걸까. 그녀는 명예라는 것이 가장 위태로운 무언가라는 것, 오랜 시간 쌓아도 단 몇 초 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과 명예를 절실하게 지키고 싶었다. 이 작품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엠마 웹스터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여성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기 때문이었고,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는 여성이 살인 혐의를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극심한 공황 상태였던 피고인이, 일어난 일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살인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견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p.235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내 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무슨 일까지 해낼 수 있을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한 두가지쯤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사랑이고, 재산과 건강, 정의, 도덕, 행복일 것이고, 우리의 주인공 엠마에게는 그것이 '명예'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술술 잘 읽히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반전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작품이지만, 후반부의 반전 또한 백미이니 말이다.



넷플릭스 TV 시리즈 전 세계 1위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로 유명한 세라 본은 세라 본은 11년간 정치부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기자 출신으로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과 특권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써 왔다. 이번 신작은 실제로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이 온, 오프라인에서 많은 위협을 당하고 있어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고 밝힌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수많은 협박과 극단적 혐오 표현에 노출된 삶을 사는 그들은 집 현관에 잠금장치를 여러 개 설치하고, 테러에 대비한 패닉룸(대피소)를 마련하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그녀가 저널리스트로 일해온 경험이 권력의 불균형과 공인의 자격, 대중과의 역학 관계 등에 대해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바탕이 되어 주었다. 다양한 인물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입체적이고, 속도감있고 다채로운 스토리 또한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법정 미스터리로도, 정치 드라마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니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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