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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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의원의 딸로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외에 - 염산과 총, 칼이 엄마를 공격하는 장면이 떠오르면 혼자서 계속 내기를 하며 성공하면 엄마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 사람들이 그녀가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힘들었다. 상류층. 거만한 아이. 엄밀히 말하면, 초등학교 때 알던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부모님을 두면 이런 오해를 산다.            p.87


엠마 웹스터는 요즘 가장 핫한 젊은 여성 정치인이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일만 하느라 결혼 생활은 파탄 났고, 사랑하는 딸과의 관계도 서먹해졌고, 커리어를 쌓느라 자기 삶이란 없다. 게다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의 사진은 노동당 하원의원이라기보다 오스카 수상 후보에 오른 배우처럼 보일 정도로 아름답고, 성적 매력과 권력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도록 나왔고, 악플러들을은 그걸 트집고 온라인에서는 온갖 성희롱 댓글이 달린다. 페미니스트 캠페인을 벌이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발언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매일 같이 협박 편지를 받고,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다.


엠마의 딸인 플로라는 엄마의 트위터 피드에서 본 공격들에 사로 잡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집으로 도착한 협박 편지에 불안에 떨며, 매일 같이 엄마가 폭발물에 다치거나, 흉기에 찔리거나,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 바쁘고, 일에 지나치게 열정적이라 여유가 없었고, 딸의 불안한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는 자주 뉴스에 등장했고, 그런 하원의원의 달로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빌미로 플로라를 괴롭히는 몇몇 친구들과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야기는 엠마와 플로라, 그리고 동료 기자인 마이크, 전 남편의 아내인 캐럴라인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엠마의 집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 하나로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를 인생 1순위로 삼고 살았던 엠마는 과연 그 명예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 했다. 그럼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이 도발적인 말은 나 혼자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저기요." 분명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대담한 척 말했다. "저기요, 누구 있어요?" 발소리가 들리는 걸까. 단단한 밑창이 바닥을 디디는 소리가, 삐걱거리는 구두 소리가 났다. 그때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p.220~221


세라 본은 넷플릭스 TV 시리즈 전 세계 1위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 원작자이다. 이번 신작 역시 넷플릭스 제작팀에 의해 영상화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세라 본은 11년간 정치부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기자 출신으로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과 특권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써 왔다. 이번 신작은 실제로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이 온, 오프라인에서 많은 위협을 당하고 있어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고 밝힌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수많은 협박과 극단적 혐오 표현에 노출된 삶을 사는 그들은 집 현관에 잠금장치를 여러 개 설치하고, 테러에 대비한 패닉룸(대피소)를 마련하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그녀가 저널리스트로 일해온 경험이 권력의 불균형과 공인의 자격, 대중과의 역학 관계 등에 대해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한 두가지쯤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사랑이고, 재산과 건강, 정의, 도덕, 행복일 것이고, 우리의 주인공 엠마에게는 그것이 '명예'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내 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무슨 일까지 해낼 수 있을까. 법정 미스터리로도, 정치 드라마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다양한 인물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입체적이고, 속도감있고 다채로운 스토리 또한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준다.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의 명성을 이을 작품이 궁금하다면, 사실적이고 시의성있는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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