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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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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이란 사회의 기대에 깔끔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뜻이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미리 쓰여 있던 완벽한 여주인공의 여정대로.... 나는 어머니가 할 수 없었던 일이, 탐험할 수 없었던 세계가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 본다. 그런 제약들이 어머니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도. 내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풀어내야 했던 온갖 일들 속에서도, 그 어떤 갈등, 또는 거리를 느낀 순간에조차,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p.51~52

 

<주노>, <인셉션>, <엑스맨> 시리즈의 배우 엘리엇 페이지의 회고록이다. 그는 2014년 성소수자청소년을 위한 컨퍼런스 연설에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해 큰 반향을 불러왔고, 2020년 12월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커밍아웃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배우가 되었다. 그는 겨우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묻는다. 남자가 될 수 있냐고. 맥도날드에서 해피밀을 주문할 때 남아용 장난감을 갖겠다고 우겼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으며, 액션피규어를 좋아했다. 왜 자신이 남자가 아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에게 상상력은 생명줄이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배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하고 배우 생활을 했던 시절을 거쳐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기까지의 여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놀랄만큼 솔직한 글들이 이어진다. 다른 모든 이들의 필요를 자신의 필요보다 앞세워, 더 이상 까다로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삭제를 허용하고, 환멸에 찬동하는 삶이란 어떤 건지 알게 되면서, 그가 스스로에게 충분히 귀를 기울이게 될 수 있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이해하게 된다. 긴 세월 동안 겪어온 혼란과 고통, 수치심과 취약함, 몸에 대한 불편감, 할리우드라는 산업 안에서 ‘여배우’로서 강요받은 ‘여성스러움’, 가족으로부터의 배제, 두 번의커밍아웃... 놀랄만큼 솔직한 글들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의 다양한 경험을 쓰고, 읽고, 나누는 행위에 대해서...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옷을 상상해 보라. 피부 속에서부터 몸을 뒤튼다. 너무 딱 붙어서 몸에서 벗겨 내고, 찢어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매일매일이 지나간다. 그런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 고통 없는 당신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생각하면, 수치심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홍수처럼 쏟아져 나간다. 그 목소리가 맞았던 거다. 너는 그런 수치심을 느껴 마땅해. 너는 혐오스러운 존재야.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 너는 진짜가 아니야.           p.288

 

현대사회에서 자존감을 지켜내면서 살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할 수 없음에도 완벽하려고 하고, 억지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한테만 엄격하게 굴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트랜스젠더’라는 관념 자체를 넘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인생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말이다. 퀴어의 삶을 다룬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여전히 사회적 인식을 넘어서서 자유롭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퀴어를 비롯한 소수자와 약자들의 서사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힘겹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런 이들을 지지해준 우정과 사랑의 힘이 언제나 존재한다. 엘리엇 페이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의 다양한 경험을 쓰고, 읽고, 나누는 행위는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한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 연대의 힘을 위해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의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야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굽어지고 틀어지는 그 여정의 끝을 향해 가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커밍아웃을 한 뒤, 충격적이게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내 삶은 나아졌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절벽 끝에 서 있는 것 같더라도, 거기서 눈을 감고 걸어 나오는 순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엔 그렇게 많은 끝과 시작이 있다. 우리의 삶은 결국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나답게 산다는 건 어떤 건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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