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작가 생활
존 스칼지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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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발. 정신줄 좀 잡으시라. 이 한 문장에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네. 하나만 들겠다. 환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따라서 작가가 환상을 가져봐야 하나 쓸모가 없다. 자신의 재능, 출판계의 상황,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인생에 대해 환상을 가진 작가는 분명 계속해서 실망하게 된다. 현실은 당신의 환상에 전혀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반면, 당신이 잘하는 게 뭔지, 출판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당신의 일반적인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작가로서의 당신의 꿈(책이 정식으로 출판되는 것 포함)을 실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p.152

 

이 책의 원제는 ' You're Not Fooling Anyone When You Take Your Laptop to a Coffee Shop(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에 가봤자 아무도 속일 수 없어)'이다. 제목만큼이나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고, 뼈를 때리는 직언으로 가득하지만, 그만큼 또 너무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노인의 전쟁> 시리즈를 비롯, <상호의존성단> 시리즈 등 20여 년간 수많은 SF 소설을 발표해온 존 스칼지가 2001년부터 2006년 초까지 5년간 자신의 개인 블로그 Whatever에 썼던 에세이를 엮었다. 글쓰기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과 금전적인 부분을 비롯한 작가 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작가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들과 SF에 관련된 이야기를 수록했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이지만, 글쓰기 방법에 관한 책은 아니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은 그보다는 작가들이 다른 작가들과 소통하는 방법, 각기 종류가 다른 글에 대한 다양한 생각, 작가와 출판사, 작가와 독자의 소통 방법, 그리고 작가들의 돈벌이에 대해 극사실적인 이야기들을 들려 준다. 무엇보다 스칼지 특유의 블랙 유머와 촌철살인 멘트들이 재미를 주는데, 작가가 되고 싶어요. 뭘 하면 되죠? 라는 질문에 "이런, 글을 써야죠. 멍청한 양반아" 라고 대답한다던가, 글을 한두 편 팔았으니 이제 본업을 그만둬도 되냐는 질문에 "맙소사, 안 된다. 멍청한 짓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며, "여러분보다 재능은 부족한데 돈은 더 많이 버는 사람은 언제든지 있다. 왜냐고? 인생은(그리고 출판계는) 변덕스럽고 잔인하다"고 하는 식이라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내가 만난 고용 작가 중에는 글쓰기가 거룩한 사명이며 영혼의 표현이라는 등등의 헛소리를 끝없이 토해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는 전기요금을 내는 문제에서는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고, 어떤 작가가 '말로만 말고 실제로 보여 줘야' 하는 일을 지금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면 그 일에 대해 따로 지껄일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또는 그래야만 한다. 사실 나는 누가 나에게 글쓰기의 거룩한 사명에 대해 지껄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이 물속에서 흡혈 거머리에 뒤덮인 채 점차 산소 부족으로 새파래져 가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재미있어 할 것 같다. 그렇다. 꽤 그럴싸한 이미지다.                p.284

 

존 스칼지가 들려주는 조언들은 그 어떤 글쓰기 강의에서도 얻을 수 없는 팁들이다. 글쓰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작가란 글쓰기가 낭만적이고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지 않아도 어쨌든 써야 하는 직업이라는 경고, 그리고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들이 종사하려는 직업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등 프로 작가 경력이 어느 정도 되어야만 알 수 있는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가감없이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작가의 급여가 낮아지게 만드는 비밀, 작가의 고료가 매우 짠데도 불구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 출판계에서 연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쓰는 글의 차이점, 원고를 거절하는 방법 등등 작가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했던 내용이 가득 들어있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 팁'도 있다.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이다. 자신이 쓴 것을 소리 내어 읽어보고, 구두점을 언제 찍어야 하는지 공부하고, 문장은 긴 것보다 짧은 게 낫고, '빌어먹을' 철자법을 제대로 배워야 하고, 제대로 모르는 단어는 쓰면 안 되며, 요점을 앞에 배치해야 한다는 등 존 스칼지가 알려주는 10가지 팁들은 작가 지망생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다. 현실의 출판 계약, 작가의 수입, 책에 대한 비평, 불법 복제와 저작권, 작가 워크숍 등 20여 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기술적인 일부분을 제외하고 출판계의 현실이 당시와 다르지 않다는 점도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 작가를 직업으로 하고 싶다면, 출판계 현실이 궁금하다면, 작가 생활의 실제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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