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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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 언제나처럼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건물 로비에서 종종 마주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건물에는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있다고. 매일 아침 사람들이 감동할 것을 기대하며 그날의 노동을 다짐하는 사람이.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쉬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창문 앞에 서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 마음에 담아둔 것을 일기에 적는 사람이. 치에코 씨를 떠올리면 건물 곳곳에 그가 있을 만한 자리마다 조명이 켜지는 것 같다. 치에코 씨가 없어도 그 자리를 알아볼 수 있다. 서로 이름을 알기 전에 치에코 씨가 나의 자리를 알아보았듯이. 하루하루. 우리 삶이 함께 흐르고 있다.                p.37~38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김달님 작가의 신작이다. 살면서 마주한 다양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했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려 주었던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작가는 지난 겨울에 자신을 키워준 두 사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두 달 간격으로 연달아 떠나 보냈다. 이 책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운 존재를 잃으면서 느꼈던 상실감과 슬픔, 공허함을 견디고 이겨내며 쓴 글들이다. 슬픔이 긴 날들에도 다시 기쁠 수 있다고 믿는 마음, 지금 여기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조용히 희망하는 마음, 그리하여 하루하루 다가오는 삶을 기꺼이 사랑해보자는 마음이 담겨 있다.

 

회사 건물의 환경미화원, 택시 기사, 산책로에서 마주친 쑥 캐는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듣는 70대 어르신, 45년 동안 물질을 해온 해녀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들려준 말들을 통해서 조금씩 자라난 마음이 '다음'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한 시절 함께였지만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 떠올리기만 해도 언제나 힘이 되는 사람들, 일을 통해서든 다른 어떤 이유로든 잠시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을, 그들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의 마음이 페이지 마다 가득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아직 살아보지 못한 여든 너머의 삶에도 여전히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배우고, 매일 반복되는 노동에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통해 나의 한구석이 반듯하게 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깨달음을 통해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다진다.

 

 

 

궁금해하다 깨닫는다. 매일 아침 달라지는 날씨처럼, 오늘도 모두에게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비가 내리는 곳에도. 차차 흐려지는 곳에도. 누군가는 열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대하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라테 아트에 성공하고, 누군가는 혼자 여행을 떠난 바다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때로는 그저 이렇게 '사람들이 살아간다'라는 사실이 마음을 일으키는 힘이 될 때가 있다. 산다는 게 뭐 별건가 싶을 때 조금 더 살아볼 만해지는 것처럼. 그리고 생각한다.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하루가 있고, 그 하루가 쌓인 사람들의 삶을 결코 다 알 수 없을 거라는 것. 몰라서 계속 궁금해지고 신기해지는 마음이 나에겐 세상을 좋아하는 방식이라는 걸.             p.180

 

나이를 먹을 수록 삶에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 크게 기대하지 않게 된다.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이 설렘보다 조심스러움에 가까워지는 것, 할 수 있던 일을 하나씩 하지 못하게 되고, 가까운 존재를 영원히 떠나 보내야 하고, 예측 가능한 행복과 고만고만한 기쁨에 만족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우리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먼 곳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은 순간도 분명 있다. 보지 않았더라면 존재하는지 몰랐을 풍경들을 찾아 가서 보고, 견뎌야 할 상실과 슬픔을 이겨내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좌절감을 산뜻하게 털어내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이런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이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날들에 내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이야기가, 내가 알 수 없는 인생들이 펼쳐져 있다. 내 옆에 있지 않더라도,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들도 어딘가에서 각자의 매일을 견뎌내고, 내일을 꿈꾸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하루가, 그 모든 인생이 나에게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는 걸 사려 깊게 보여준다. 예쁜 표지만큼이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계절을 계절답게 하는 존재의 이름을 익히며 세상에 알아야 할 이름이 여전히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설레이고, 세상에 없는 아름다움을 믿게 하는 따뜻함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작가는 '사람들의 포옹, 사람들의 말, 사람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결국엔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야 할 나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수 년 동안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는 글을 써온 이력 때문인지 모든 글에 인간적인 시선이 담겨 있어서 특히 더 좋았던 것 같다. 우리를 조금씩 자라게 하는,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말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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