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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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내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여기에 물질의 차원으로, 말라서 갈라지는 시냅스 덩어리 차원으로 축소된 의식이 있었다. 형은 단어들의 사용법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사물과 제대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 사물들과, 에너지장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형은 새로운 이름들을 발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형의 자리는 나무랄 데 없는, 심지어 시적인 자리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곳이었다. 형은 죽음을 만져봤지만, 혹은 죽음이 형을 건드렸지만, 형에게 삶이란 심지어 그런 것도 가능한, 여전히 흥미로운 어떤 것인 듯이 보였다.             p.85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는다. 사실 그의 계획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대충 이야기를 나누다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의 뻔한 이야기를 적당히 받아적다가 올 예정이었다. 밤이 되면 자신이 몰고 간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있다가 분위기를 좀 느끼고 나서,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 취재는 그의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급기야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와 울기 시작한다. 이 여행을 장난처럼 생각하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이였던가부터 시작해 형편없이 무너져버리게 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하다면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 '이 반석 위에서'를 읽어 보자.

 

이번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대피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글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에서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풍해일을 만들어 냈는데, 파도 높이가 무려 9미터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거대한 해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어닥쳤기 때문에 미시시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는 인근 초등학교에 마련된 적십자 대피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낮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2미터가 넘는 물이 집 안에서 넘실대고 있었다는 사람부터, 바람이 휘몰아쳐 나무에 부딪히고, 주변에는 뱀들이 헤엄치고 있었다는 이도 있었으며, 대부분 자신이 곧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말은 바로 '사라졌다'는 거였다. 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산책로들이 사라져버렸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미래는 강제로 뜯겨나갔고 거대한 공백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생생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 세상의 진짜 마지막의 시작'을 그려낸다.

 

 

 

이런 식의 과열된 선언은 모두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무시해버리기 전에, 우리는 그 노래들에 표현된 느낌이나 표현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단순하고 기술적인 설명이 하나도 없는지 질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젊은 소비자들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를 장악해버린 로큰롤에 블루스의 서사를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 분리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다른 요소 또한 존재한다. 더 깊고, 더 농익은 근원이다. 이 음악에 대해 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주목했다. 로버트 파머는 이걸 '깊은 블루스'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는 중압감 속의 중압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p.420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글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에 수록된 다소 장황한 서문으로 처음 만났었다.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끈이론>에서 테니스 경기를 둘러싼 모든 철학적, 정치사회적, 심지어 수학적 맥락들을 깊이 쑤시고 건드리며 테니스의 시간을 경이로운 산문의 언어로 옮겨냈다. 그리고 그 독특한 에세이만큼이나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서문 또한 유려한 언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그는 다수의 매체에 글을 발표해왔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그 중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에세이라는 카테고리의 책 중에 이렇게 두툼한 분량의 작품이 있었나 싶은데, <펄프헤드>는 무려 564페이지에 달한다.

 

이 벽돌 에세이집에는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비롯해서,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와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체험기 등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글은 현란하지만 어렵지 않고, 날카롭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며 놀라운 세계를 보여준다.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방식의 글은 저널리즘 역사 속에서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뉴 저널리즘'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런 형식의 글을 우리 저널리즘 역사나 문학사에서는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이번에 출간된 <펄프헤드>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훌륭한 저널리즘이 갖춰야 할 덕목을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인디언 동굴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의 깊이 있는 이면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라 불리는 뛰어난 저술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탁월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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