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인간 - 오야부 하루히코 문학상 수상작
츠지도 유메 지음, 장하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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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개입한다고 해서 그들이 호적을 취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회적 약자인 그들의 처지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창고와 공장을 오가는 단조롭고 소박한 삶에서, 돌아갈 집과 직장을 동시에 잃고 의지할 곳 없이 바깥세상에 툭 내던져질 것이다. 이는 정의를 앞세운 일개 형사의 행동이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은 딱히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이 도쿄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죽어가려 했을 뿐인데. 리호코는 이제껏 법을 지키는 것과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일은 같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 리호코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에 직면했다.           p.90~91

 

한적한 주택가, 20대 남성이 갑자기 뒤에서 습격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 온다. 발소리를 알아 차리고 피한 탓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은 남자는 범인이 전 여자친구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술집에서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는데, 집요하게 쫓아와서는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갔다는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출동한 가마타경찰서 강력계 여형사 리호코는 현장 근처에 숨어서 그쪽을 살피던 갸날픈 여성 하나를 체포한다.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자백해 수월하게 끝이 날 것 같았던 수사는 시작하자마자 암초에 부딪힌다. 하나가 이름도 주민번호도 없는 무호적자였던 것이다. 신분증이 없는 것은 물론 주소도, 직업도 없었고, 자신의 성도, 생년월일도, 출생지도 본적도 죄다 모른다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리호코는 연민을 느낀다.

 

결국 모든 것이 미상인 채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지만, 하나가 자백을 번복해 범행을 전면 부인하게 되고, 유력한 용의자임은 분명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었으므로 결국 그녀는 풀려나게 된다. 리호코는 연민과 의심으로 하나의 뒤를 쫓다가 무호적자들이 모여 만든 수상한 집단공동체 '유토피아'를 발견하게 된다. 무호적자들이 사회 보험도 없이 공장에서 일하며, 거주용이 아닌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세상의 도움 없이 자기들끼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폐쇄된 이상향, 그중에는 미취학 아동까지 있었다. 리호코는 유토피아의 정체에 대해 취재하면서 리더인 료와 하나가 함께 버려진 아이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두 사람이 남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2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새장 사건의 당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인 미수 사건과 미제로 끝난 아동학대, 실종 사건이 연결되면서 서서히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인간도 없다. 불완전한 인간끼리 부족하더라도 서로 보듬어주며 겨우 그럴듯한 형태를 유지하며 산다. 그러나 태어난 순간, 한 사회의 그물망에서 빠져나온 사람도 있다. 자신이 사는 곳이나 직업을 자기 의지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완벽을 추구하려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사치스러웠는지 돌아보게 된다. 삶은 '완벽'이 아니라 '충분'을 지향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소한 부분은 눈감아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p.325~326

 

오야부 하루히코 문학상 수상작이자, 국내에 <나와 그녀의 왼손>, <지금, 죽는 꿈을 꾸었습니까> 등의 작품으로 소개되었던 츠지도 유메의 신작이다.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우수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녀가 호적에 이름이 없는 사람, 즉 ‘무호적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데뷔작인 <사라진 나에게>였다고 한다. 등장인물의 호적에 대해 독자들이 의구심을 품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무호적자들이 호적을 얻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작가의 숙고 끝에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이야기라 그런지 무거운 사회문제를 매우 현실적이고도, 먹먹한 드라마로 그려내어 공감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서두에서 보여진 '새장 사건'은 세 살 남자아이와 한 살 여자아이가 빌라에 갇혀 지내다 구조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두 자녀만 두고 수일 동안 집을 비워 양육을 방임한 두 아이의 어머니가 체포되면서 사건은 종료되었지만, 수년간 아이들이 새와 함께 방에 감금된 상태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도, 교육을 받지도 못했다는 사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이 사건 보도는 당시 여섯 살이던 리호코가 어른이 되어 경찰이 되도록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부모의 아동 학대 사건은 여전히 현실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결코 이야기 속 상황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부모의 육아 방임, 믿을 수 없는 학대에 관한 뉴스를 세상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말고 사회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당연하게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취업해서 사회 보험을 들고, 세금이며 연금을 내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버젓이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 섞여서, 살아 있는 유령처럼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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