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테스 샤프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6월
평점 :
어쨌든 우리 자매는 깨진 조각들을 억지로 갖다 붙인 그런 여자를 엄마로 두고 자란 상처투성이의 아이들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사기꾼이었으니까, 나는 사기꾼의 딸로 태어났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엄마처럼 미소로 상대를 현혹하는 자질도 타고났다. 사람들은 이걸 '매력'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것을 '유용한 것'이라 부른다.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이에 따라 어느 상황에서건 그에 적응하여 상대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거울처럼 행동하는 능력. 이건 자질도 저주도 아니었고 그냥 쓰기 좋은 도구였다. p.37
노라는 전 남친과 현재의 여친과 함께 은행에 도착했다. 현재의 여친이 전 남친과도 친구 사이였기에, 셋이 함께 모이면 불편할 수밖에 없었지만, 잠깐 은행 안으로 들어가 돈만 입금하면 되니까 20분만 참자고 생각한다. 이른 아침이라 줄을 서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고, 노라와 아이리스, 웨스는 줄을 선다. 그런데, 그들 바로 앞에 줄을 서 있던 남자가 갑자기 총을 꺼내 든 것이다. "바닥에 엎드려!" 라는 은행 강도들의 18번 대사를 듣고는,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바닥으로 엎드린다. 그렇게 세 친구는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는데, 보안 요원은 총에 맞아 쓰러지고, 강도들이 원하는 지점장은 현재 자리에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노라는 어떤 방법을 쓰든 자신과 친구들이 살아남도록 해볼 작정이다.
여기서 잠깐, 노라는 평범한 10대 소녀가 아니었다. 노라의 엄마는 전문 사기꾼이었고, 자신의 딸을 철저하게 교육시켜 사기에 이용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기꾼의 수제자로 자란 노라는 자연스럽게 사기를 배웠다. 노라의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각기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여 그에 맞는 성격과 머리 색깔을 갖도록 했고, 먹잇감을 완벽하게 사기 치기 위해 분신하는 여자들의 완벽한 딸이 되도록 강요했다. 그렇게 레베카,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 애슐리라는 각기 다른 성격과 겉모습을 가진 소녀들이 탄생했고, 사실 노라의 이름 또한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노라는 그렇게 거짓말과 폭력의 삶 속에서 살다가 겨우 엄마와 그녀의 남편을 감옥으로 보내고, 그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나 5년 째 평범한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한때 희대의 사기극 중심에 섰던 노라는 그 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정체를 무기로 엄마로부터 배운 기술들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은행 강도들에게 맞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런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가? 세상은 그런 거란다. 남자란 다 그런 거야. 세상은 다 그런 거니까 네가 알아서 처신해. 이번에도 엄마는 세상은 다 그런 거니까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할가? 내가 헤일리였을 때 엄마는 '이거 해낼 수 있지?'라고 했고, 나는 '그렇다'고 했으며, 그 결과 피를 보았다. 난 지금까지 항상 너무 '예'라고만 했던 건 아닌가? 모든 걸 포기하고? 그래서 결국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거지? 우리 엄마는 괴물일까? p.231
이야기는 은행 강도의 인질이 된 노라와 친구 아이리스와 웨스의 현재 시점과 노라의 과거가 교차 진행된다. 노라와 언니 리가 어떻게 엄마로부터 벗어났는지, 노라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짓까지 저질러야 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노라의 친구 두 명과의 과거도 함께 보여지면서, 그들간의 관계와 현재 노라의 처지에 대해서도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 나간다. 무엇보다 노라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는 장들이 충격적이다. 상냥하고, 조용하며, 명랑한 소녀로 살 때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머리띠를 하고 다니다가, 가냘프고, 우아하며, 얌전한 소녀가 되어서는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다니며 엄청난 장난감 인형을 쌓아 놓고 살았고, 겸손하고, 독실하며, 얌전한 소녀일 때는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해도 연약하게 다 받아줘야 했으며, 그러다 결국 사랑스럽고, 생기 넘치며, 똑똑한 소녀가 되어서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노라의 어린 시절은 의지할 곳 없는, 정신적으로 학대 당한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노라는 살아 남았고, 그 여러 명의 소녀들이 가르쳐준 거짓말하는 법, 숨는 법, 싸우는 법, 두려움, 생존하는 법을 다시 꺼내려고 한다. 친구들을 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테스 샤프는 이 작품을 통해 정말 매혹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곧 넷플릭스로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영상화된 버전도 매우 기대가 된다. 원작 소설 역시 시리즈로 만들어도 되겠다 싶을 만큼 캐릭터의 힘이 압도적인 작품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펼쳐져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한 번도 진짜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 보지 못한 한 소녀가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과정, 가짜 삶이 아닌 진짜 삶을 배우기 시작하는 순간의 감동도 있고, 끝까지 드라마틱한 전개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몰입감도 뛰어난 작품이다. 완벽한 캐릭터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