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부사 소방단
이케이도 준 지음,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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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끈 뒤에 풍기는 자극적인 냄새가 다로의 코를 찔렀고, 다시 화재 현장을 돌아본 다로는 말없이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봄처럼 눈부시고 평온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따스함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하야부사 지구는 아무래도 다로가 믿고 있던 것처럼 느긋하고 평화로운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평온한 경치 뒤에 숨어 있는 악의를 알게 된 다로는 그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p.66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작가인 미마 다로는 분리형 원룸 월세방에서 필사적으로 글을 쓰며, 먹고살아야 한다는 현실 속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쓰던 소설을 취재하기 위해 이웃 현을 방문했다가 수십 년 만에 아버지의 고향인 하야부사 지구를 찾게 된다. 도시 생활에 지쳐 있던 다로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초목과 맑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축사 냄새 등 산촌의 매력에 빠져 결국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여섯 지구 중, 해발 500미터 고원에 있는 것이 하야부사 지구로, 다로는 아버지가 남겨 준 자그마한 목조 단층 건물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이사 온 지 2주 정도 지났을 무렵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방단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게 된다. 마을에 인구도 적은 데다 이곳에 사는 젊은이들은 모두 들어왔다는 말에 안 하겠다고 빠질 수도 없어 다로는 하야부사 소방단에 들어가게 된다.

 

하야부사 소방단은 화재가 발생하면 멀리서 와야 하는 소방차 대신에 초기 진압에 나서고, 행사에서 안전 관리 등의 일을 하는 마을의 자경단과도 같은 조직이었다. 그런데 소방단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재가 발생해 현장에 출동할 일이 생기고, 최근에 연쇄적으로 방화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화재 원인이나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 사람 하나가 강에 빠져 죽는 사건까지 발생하게 된다. 방화가 네 건, 시체가 한 구였지만, 방화범이 누구인지, 동일 인물인지도, 강에서 발견한 남자가 왜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는데, 기어코 수상쩍은 사람이 등장한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다로는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이 되어 마을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속 방화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혼자서 일어서려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고, 다로는 제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하늘을 보며 쓰러졌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땅바닥에 못박혀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맹렬하게 치솟는 오한 때문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인생 최악의 순간이다. 그런 다로를 섬세하고 투명한 남색 밤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유리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이. 그것은 분명히 다로가 지키려 했던 하야부사의 밤하늘이었다.            p.657

 

어디든 그렇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가지고는 속 사정을 파악할 수 없는 법이다. 느긋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던 산촌도 들춰보니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정이 존재했다. 복잡한 인간관계나 사정이 있는 것은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다양한 알력이 생기고 거기에 휘둘리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도 도시든 시골이든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자연이 풍요롭고, 느긋하고, 살기 편할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사를 온 다로는 도시에서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시골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연쇄 방화사건으로 시작된 마을의 소동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아름다운 땅을 팔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는 사람들과의 갈등, 인구가 줄어들어 점점 어려워지는 마을을 살리려는 노력과 그러한 마을을 지키려는 소방단 활동, 거기다 사이비 종교 집단까지 연계되어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다로는 외부인이라는 입장과 사람을 관찰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작가라는 위치에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다. 과연 다로와 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가장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작가답게 그 동안 만나온 이케이도 준의 작품들은 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캐릭터를 통해 완벽한 재미를 선사했었다. 매번 아주 두툼한 페이지에 등장인물도 많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구성이 짜임새가 있어 가독성이 좋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비롯해서, <변두리 로켓> 시리즈와 <일곱 개의 회의>, <루스벨트 게임>,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 대부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직장인들의 통쾌한 반란과 도전을 그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심이 아니라 시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작품이라 흥미로웠다. '전원 추리소설'이라 이름 붙은 이 작품은 올해 7월에 일본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기도 하다. 풍요로운 자연과 함께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관계를 짜임새 있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 영상화된 버전도 기대가 된다. 언제나 믿고 보는 작가 이케이도 준이 도시가 아니라 시골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써낸 미스터리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케이도 준의 색다른 매력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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