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을 말씀드립니다
유키 신이치로 지음, 권일영 옮김 / 시옷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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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 머물렀다. 거기 적혀 있는 '글자'가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혼란해지며 심장 고동이 빨라졌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다음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쳤다. 그리고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그걸 계기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느꼈던 '위화감'이 다시 떠올랐다.                - '참자면담'중에서, p.41~42

 

가정교사 영업사원인 나는 도쿄에 있는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12세 남자 아이의 집을 방문한다. 가을에 치른 전국 모의고사 결과가 엉망이라서 과외의 필요성을 느꼈다는데,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아들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반응이 영 미지근하다. 아들을 나무라는 듯한 어머니의 매서운 말투, 눈치를 보며 잔뜩 움츠러든 아들, 게다가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며 손님이 왔는데도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어머니의 태도도 뭔가 이상하다. 잘 통하지 않는 대화, 예상과 다른 반응, 나는 계속해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위화감의 정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게다가 그 반전이 끝이 아니었으니...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에서 오는 신선함이 아주 인상적인 작품 '참자면담'이다.

 

 

이어지는 '매칭어플'이라는 작품은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참 '매칭 어플 살인사건'이야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실제로 어플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대학교 3학년인 딸이 있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플을 통해 만난 20대 여성을 '테이크 아웃'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는 소개팅 후에 바로 상대를 데리고 가서 잠자리를 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1차로 수제 맥주 전문점에 갔다가 2차로 바에 들렀다가 지금은 여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상황 전개덕분에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근본적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는데, 그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기에 샤워를 하며 지금까지의 흐름을 되짚어본다. 과연 그가 여자의 집에서 무의식중에 맡은 '위화감의 냄새는 무엇때문이었을까. 이 작품 역시 거듭되는 반전이 있고, 그 반전은 대부분의 독자들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친다. '당신의 예상은 반드시 배신당한다'는 홍보문구가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변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느 때와 똑같은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이 아이들과 어울리면 안 된다'라고 하는 생각이 빤히 보이는 듯했다. 무엇보다 믿을 수 없었던 점은 그런 섬사람들 가운데는 린코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다른 섬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린코도 우리 곁에서 떠나가고 말았다. 모든 게 이날부터였다. 뭔가 톱니바퀴가 어긋나고, 우리 일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 '#퍼트려주세요'중에서, p.244~245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유키 신이치로의 첫 단편집이다. 미스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2023 일본서점대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최근 만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 〈#퍼뜨려주세요〉는 제7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기도 했다. 이 책을 번역한 권일영 번역가님은 '미스터리 독자로는 오래간만에 맛보는 청량감'이라고 소감을 남겼는데, 그만큼 짧은 분량에 걸맞게 꼭 필요한 요소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군더더기 없는 작품들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핫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현대적인 소재를 깔끔하고 세련된 미스터리로 잘 풀어내고 있다. 데이트 앱, SNS를 통한 정자 제공, 온라인 회식, 그리고 유튜브 모두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하게 되는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소재들이라 흥미로웠다. 꽤나 오싹하게 만드는 반전의 순간들이 많았기에 본격적으로 호러 미스터리를 써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 유키 신이치로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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