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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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대부분 날 처음 보죠. 난 워싱턴 포 경사입니다. 다들 내가 약자를 괴롭히는 인간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용납하지 않았다. 이름도 이상한 데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완전히 괴짜라는, 이 치명적인 삼중주 덕분에 그는 학교에서 단골로 괴롭힘을 당했다. 오래지 않아, 포는 살아남으려면 자기를 괴롭히는 녀석이 누가 됐건 그놈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놈에게 알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쳤다.        p.78

 

영국 컴브리아 카운티에 최초의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 선사시대 유물인 '환상열석' 중 몇 곳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들이 발견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그를 '이멀레이션맨'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한편 수사에 참여한 중범죄분석섹션에서는 세 번째 피해자를 조사하던 중 정직된 경관 '워싱턴 포'의 이름이 시신에 새겨져 있다는 것울 알게 된다. 섹션은 포가 다음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그의 업무 복귀를 결정하고, 그렇게 워싱턴 포와 데이터 분석가 틸리 브래드쇼가 만나게 된다.

 

이멀레이션 맨은 피해자의 가슴에 왜 '워싱턴 포'라는 두 단어를 새겨 넣은 것일까. 이름과 함께 새겨진 숫자 5 때문에 그들은 포가 다섯 번째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발견된 것은 셋이었으니, 이멀레이션 맨이 네 번째 피해자를 고르는 동안, 그가 다섯에 도달하기 전에 찾아야만 했다. 컴브리아 지역은 영국에서 환상열석, 선돌, 헨지, 거석, 고분이 가장 밀집된 곳이었다. 그 돌들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학계에서는 다양한 설이 있었지만, 그것이 희생 제의를 위해 쓰인 적은 없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그렇다면 이멀레이션 맨은 굳이 왜 그런 장소를 골라 피해자들을 불에 태워 죽인 것일까. 피해자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전부 같은 나이대에 다들 부유했다는 것뿐이었다. 서로 알고 지냈다는 증거는 없었다. 수사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포에게 악몽이 다시 돌아왔다. 너무 똑똑하고 체계적이어서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은 치밀한 연쇄살인범은 곧 네 번째 피해자를 선보이는데, 사건의 흔적을 열심히 뒤쫓지만 여전히 포가 이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불투명했다.

 

 

 

"우리가 함께라면 얼마나 무시무시했을지 생각해봐. 네 친구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했을 거야. 놈들한테 가망 따위 없었을 거라고."
"정의 때문에 하는 게 아냐, 포. 정의를 위한 일이었던 적은 한순간도 없어. 이건 복수야."
복수.... 포는 중국의 격언이 떠올랐다. "복수를 추구하는 자는 무덤을 두 개 파야 한다. 하나는 적을 위해 하나는 자신을 위해." 포는 남은 이야기를 거의 짐작할 수 있었다.         p.421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M. W. 크레이븐은 이 작품으로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다. 이어지는 시리즈 2편과 3편 모두 골드 대거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이 시리즈는 현재 5권까지 출간되었고, 곧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밀레니엄>을 넘어설 강력한 수사 듀오의 탄생이다. 데이터 분석가인 틸리 브래드쇼는 뛰어난 지능에 박사학위가 두 개 있었고,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연구소 회원일 정도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해 어딜가나 외톨이다. 브래드 쇼는 뛰어난 직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이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동료들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틸리와 포는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친구가 없었고 두 사람은 이상하게 마음이 잘 맞았고, 그렇게 색다른 수사 듀오가 탄생하게 된다.

 

특히나 틸리라는 여성 캐릭터는 <밀레니엄>의 리스베트를 떠올리게 할만큼 아이큐가 뛰어난 천재인데,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인생의 기술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한 번도 현실 세계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초 규범을 전혀 체득하지 못했고,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말을 해 상대를 당황시키며, 소통에 너무 서툴러 한 번도 친구라는 존재를 가져보지 못했다. 어리숙하게 보일 정도로 순수하지만, 의외로 베짱은 두둑하고, 통계 분석과 수학에서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인다. 그 어떤 작품에서도 만난 적 없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라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의 활약이 정말 기대된다. 그리고 포가 자신의 직관을 이용해 수사하는 과정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 작가가 차곡차곡 쌓아온 단서들이 퍼즐 조각들이 되어 하나로 맞춰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작고, 겉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이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너무도 짜임새있게 그려내고 있어 왜 3회 연속으로 골드 대거상 후보에 선정되었는지 저절로 수긍이 되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이멀레이션맨'이 아니라 '퍼핏 쇼'인 이유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되는데, 탄탄한 서사와 겹겹의 반전,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이 그 과정을 더욱 흡입력있게 만들어 준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가 더 기대되는 작품으로, 역시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원서부터 주문했다. 다음 작품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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