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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서점 -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던 할머니. 잠자리에서 흘러 지나간 환상들. 그 기억들은 여태 연서를 지탱하던 것들이었다. 현실에서 조금만 빗겨나가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공상. 그런 생각만으로도 그녀는 가슴이 떨렸다. 이 아이에게도 어쩌면 그런 환상이 만들어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연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갈게요. 저도 어릴 때 누가 책 읽어주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p.32
어느 날, 어느 밤, 가던 방향을 잃었을 때쯤 만날 수 있는 서점이 있다. 벽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책장이 그득하고, 바닥에는 진녹색 카펫이 넓게 깔려있다. 마치 오래된 고목에 낀 이끼 같은 장소. 보통의 서점과는 다르게 음침하고 기묘한 분위기로 가득한 곳이다. 하지만 책을 살 필요도 없으며,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은 무한정이다. 게다가 원한다면 서점주인의 낭독을 감상할 수도 있다. 서점주인은 무척이나 온화한 목소리로 끔찍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런 다음 공포를 느끼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둥, 화를 돋우는지 달래는 건지 모를 말을 덧붙인다. 이곳은 바로 허상과 실재가 공존하며, 기억과 미래가 혼재하는 곳, 환상서점이다.
연서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동화작가가 되겠다고 나선 뒤 2년째다. 그동안 총 일곱 번, 얼굴도 보지 못한 출판 편집자들에게 거절의 메일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 받은 거절의 메일에는 해피엔딩이 아닌 결말에 대한 아쉬운 부분이 있어 유독 화가 났다. 자신은 동화의 그런 결말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글이 그들의 말대로 상업성이 전혀 없는 것인지, 문득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진 연서는 산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어두운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길을 헤맨 끝에 절벽앞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자진의 서점으로 연서를 안내하고, 그곳에서 검푸른 빛깔에 묵직한 두께의 책을 펼쳐 읽어 준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너머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 연서는 울적한 날이면 서점을 찾게 된다.
여기엔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가 얽혀있을까? 그녀는 자주 하던 대로 허황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웃었다. 돌이켜보면 이게 바로 그녀가 동화를 쓰려고 한 이유였다. 말도 안 되는 환상을 떠올리는 단 한순간, 잠시 현실을 잊고 쉬어가는 찰나, 그런 때를 사람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걸 이제야 다시 깨닫다니. 괜히 길을 헤맨 기분이었다. 아니, 헤맨 덕에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 서점처럼. p.163
이 작품은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으로 먼저 공개되어 사랑받았던 작품이다. 오디오북이 소설화되어 전자책이 나오고, 이후 전자책이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방식은 처음이지 않을까. 게다가 단순한 매체 전환이 아니라 각 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유기적 세계관 연결을 구현해 내며 최초의 역주행 열풍을 일으켜 출판 시장의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오디오북을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는 편이라, 이 작품 역시 종이책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역시나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유명 성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오디오북도 궁금해졌다. 고풍스러운 잔혹동화 스타일의 이야기와 동양풍의 판타지가 빚어내는 서사가 왜 오디오북으로 그렇게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지 자연스레 짐작하게 만들었기때문이다. 특히나 종이책 버전이 오디오북의 서점주인이 들려주던 기묘한 이야기에서 세계관을 넓고 깊게 확장시킨 버전이라고 하니, 더욱 오디오북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환생을 거듭하면서 질기도록 이어지는 인연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이야기라 배우의 연기가 곁들여지면 더 근사할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한 사람은 영원을 살고, 또 한 사람은 영원히 기억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마법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