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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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밤나무에는 밤이 잔뜩 열렸다. 아버지가 나뭇가지로, 혹은 나무에 올라가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탐스런 밤을 땄다. 그걸 엄마가 신발 신은 발로 밟아 솜씨 좋게 껍질을 벗겼다. 오사카의 아파트 단지에서 보던 부모님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때 '과거'가 있다는 것이 감각적으로 부러웠다. 어린이인 내게는 추억의 양이 너무 적었다.         p.13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별로 필요하지 않고, 지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어쩐지 신경이 쓰이는 것들이 있다. 감자 샐러드에 어떤 식재료를 넣는지, 나의 궁극의 몽블랑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품매장, 이웃집의 화분 상태, 슈퍼나 편의점의 아이스크림 코너, 은행에 비치된 잡지의 종류 등등.. 이 책은 마스다 미리의 소소한 일상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인생에 별 필요 없는 확인을 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귀엽고, 진지하지만 코믹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꼭 필요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사거리 신호등이 전부 '빨강'이 되는 순간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 다양한 사람의 작은 아름다움이 거리에 흩어져 있을지도 몰라 자신도 모르게 매번 확인하게 된다고.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슈퍼에서 장을 보다가 남의 바구니 안을 슬쩍 보면서 식구는 몇 명일까, 어떤 가족 구성일까, 상상하는 시간,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듯한 조금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소소한 관심의 순간이다. 거리에서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잠깐 동안의 행복, 회식하고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 가게의 배치도를 보는 여유, 이따금 보게 되는 나비를 만나며 잠시나마 나비의 기분이 되어보는 즐거움... 매 페이지마다 맞아. 맞아.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날마다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고, 다른 누구와도 교대할 수 없다. 잠시 그 짐을 내려놓고 정리정돈 책 속의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아~무것도 없네." 하고 개운해하고 싶은 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난 날일수록 헤어진 뒤 혼자 영화를 보고 돌아갈 때가 많다. 일단 다른 세계에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p.138

 

별 볼 일 없는 일상의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세계를 이토록 다정하고, 담백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마스다 미리의 작품 속에는 그냥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기분 좋은 일, 의미가 없더라도, 뭔가 이득이 생기지 않더라도 그냥 그 순간으로 충분한 행복들이 가득하다. 작은 행복이 여러 개 모여서, 그 소소함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어른의 행복이라는 걸 아는 나이라면 더 공감하며 읽게 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 보면, 보통의 매일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안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한 순간이 오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의 오늘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긍정 마인드가 내게도 전염되는 기분도 들어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도 들고 말이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면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싶을 만큼 작은 일상 속 순간들, 우리에게도 매일 같이 벌어지는 평범한 나날들. 그런데 마스다 미리는 그 속에서 기어코 반짝거림을 발견해낸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마스다 미리의 소소한 글과 그림을 통해서 일상 속 작은 여유를 느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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