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왕 - 트랙의 왕, 러닝슈즈의 왕
이케이도 준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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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내서 밖으로 나가면 자연히 걷게 되니까요/"

"신발은요?"

아리시마가 웃었다.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가죽 구두든 뭐든요. 갑자기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시작하는 것. 그게 부상당하지 않고 오래 지속하는 비결입니다."

어쩐지 그것은 회사의 경영 방침과 일맥상통한 것 같았다.          p.53


교다 시는 일본식 버선인 '다비'가 일상적으로 신는 물건이던 무렵, 수많은 제작업체가 밀집해 있던 다비의 고장이었다. 하지만 시대와 복식이 변함에 따라 수요가 감소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이곳에 백 년 동안 다비 제작을 생업으로 이어온 영세 기업 '고하제야'가 있다. 직원 스무 명, 평균 연령은 오십칠 세, 숙련공 중의 숙련공들만 남아 있지만 수요도, 매출도 하락만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래성이 전혀 없는 사업을 운영하느라 힘겨운 미야자와 사장은 거래처 직원의 제안으로 회사의 미래를 위해 신규 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은 발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 러닝슈즈였다. 그 상품이 인기가 있는 것은 '맨발 감각'으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고하제야의 주력 상품인 지카타비 역시 맨발 감각으로 지면을 디딜 수 있었다. 기존의 제작 노하우를 활용한다면, 이런 러닝슈즈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미야자와는 과감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상품화하기 위한 샘플을 개발했지만, 번번히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높다란 시장의 벽 앞에서 번번히 좌절한다. 실적도 없고, 돈도 없고, 노하우도 없는 영세 업체가 세계적 스포츠용품 회사를 넘어설 수 있을까. 





"세상에서 돈이라는 가치관을 없애면 정말 필요한 것, 소중한 것만 남겠지요." 모기는 생각을 순순히 입 밖에 냈다.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당연한 것 중에 정말 소중한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유대도 그런 것 아닐까요?" 울컥 복받치는 것을 참으며 모기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절대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치고 오겠습니다. 응원해주십시오!"             p.458


이케이도 준은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가장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작가이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무려 네 권짜리로 엄청난 분량의 작품이었지만,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이 '읽는 재미'를 안겨주는 소설이었고, 이후에 나온 <변두리 로켓> 시리즈와 <일곱 개의 회의>, <루스벨트 게임>,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 출간된 모든 작품들이 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캐릭터를 통해 완벽한 재미를 선사했었으니 말이다. 그의 작품들은 매번 아주 두툼한 페이지에 등장인물도 많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구성이 짜임새가 있어 가독성이 좋다. 언제나 기본적인 구도는 영세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맞서 싸우는 식이지만, 은행, 자동차, 운송회사, 로켓 부품 등 소재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속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도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직장인들의 통쾌한 반란과 도전이야말로 이케이도 준의 특기인데, 이번 작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재미를 선보인다. 일본식 버선만 백 년째 만들어온 영세 기업이 러닝슈즈를 개발해보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고, 한때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재활 훈련 중인 육상선수와 회사의 이익보다 선수들과의 신뢰를 더 중요하게 여기다 직장을 잃게 된 러닝슈즈 전문가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시련에 좌절하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케이도 준은 언젠가 길고 고된 싸움이 끝나면 밝은 미래가 찾아오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꿈을 향해 전진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존중과 응원을 보내는 따뜻한 드라마를 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만 누적 6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TBS에서 10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엔터테인먼트 소설과 스포츠 소설의 장점을 잘 버무려 이케이도 준 특유의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인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매일을 성실하게, 물러서지 않는 열정으로 정진하는 이들의 뭉클한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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