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도어 프라이즈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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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삶은 어떤 삶인거지?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하고, 집안일을 하고, 일요일이면 십자말풀이를 하며 잡담을 나누느라 여태 미뤄왔던 꿈은 뭐였지? 그런데 살면서 이루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일들을 과연 꿈이라고 말해도 될까? 인생이 반이나 지나갈 때까지 자신에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런 꿈이 숙명이 될 수도 있을까? 나의 진정한 소명은 뭘까? ... 디어필드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는 걸까? 이렇게 살겠다고 태어난 걸까? 어째서 더 큰일은 못 해? 더 대단한 일은? 나 역시 조만간 마흔이 되지 않나?           p.29

 

루이지애나의 작은 마을 디어필드의 한 식료품점에 어느 날 이상한 기계가 하나 등장한다. 디엔에이믹스라는 기계는 ‘DNA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졌다면 될 수 있었을 나의 가능한 신분’을 알려준다. 비용은 단돈 2달러, 면봉으로 볼 안쪽을 문지르고 기계의 구멍 안으로 집어 넣기만 하면 된다. 결과지에 담겨 있는 가능성을 믿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된다. 결과지에 핵물리학자가 될 거라고 써 있다는 이유로 앞으로 역사 수업은 듣지 않겠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사업가가 될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 갑작스레 가게를 시작해 일주일 만에 대박이 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마냥 무모하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에 흔들리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중년의 역사 교사 더글러스 하버드와 그의 아내 셰릴린, 더글러스의 학교 제자인 제이컵과 죽은 쌍둥이 형의 여자친구였던 트리나, 그리고 트리나의 삼촌이자 마을의 하나뿐인 신부인 피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던 그들의 잔잔한 일상에 디엔에이믹스라는 기계가 돌멩이를 던졌고, 그로 인해 생긴 작은 파문이 점점 더 커다란 물결이 되어 버린다. 운 좋게 얻은 큰 선물이라는 뜻의 제목 ‘빅 도어 프라이즈Big Door Prize’처럼, 이들이 얻게 되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선물일까, 아니면 받지 않는 것만 못하는 재앙일까. 과연 각자의 '진짜 운명'은 지금의 현실과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어 줄까.

 

 

 

우리가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추억하며 웃으면 되잖아. 삶을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는 건 애초부터 우리가 원한 게 아니지 않나? 기계가 우리의 운명을 알려주다니. 우리의 인생이 이미 정해진 거라니, 한꺼번에 정해진 거라니. 말도 안 되지 않나? 실망스럽지 않나? 차마 상상하기도 싫지 않나? 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고작 종이 쪼가리 하나 때문에, 우리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        p.257~258

 

누구나 살다 보면 기습적으로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취미 하나 없이, 책장에 장식한 멋진 트로피 하나 없이, 세상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해서 시작한 일조차도 전만큼 보람차지 않고, 그 직업으로 인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고, 이 지구상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럴 때 단돈 2달러만 내면 나의 DNA를 읽어서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내 가능성을 알려주는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

 

모든 것이 제대로 됐다면 내가 했을 수도 있는 일, 지금과 다른 세계에서는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 작품은 그렇게 알게 된 각자의 운명으로 인해 삶이 바뀌고, 흔들리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재미없는 삶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디엔에이믹스가 알려준 미래에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삶이 '운 좋게 얻은 큰 선물'이 아니라, 사소한 선택들과 매 순간의 고군분투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사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마이 선샤인 어웨이>에서 사랑과 집착을 주제로 한 소년의 성장담을 그려냈던 M. O. 월시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한 시즌짜리 미국 TV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넘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애플TV+ 10부작 드라마로 2023년 상반기 방영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안락하고 평온한 마을 전체를 흔들어 놓은 마법 같은 이야기가 영상으로는 또 어떨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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