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소연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느끼는 이 공포를 이해하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끔찍한 해역의 미스터리를 풀고 싶다는 내 호기심이 절망감마저 넘어선 이상, 더없이 참혹한 죽음과도 타협할 수 있게끔 나를 이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흥미로운 지식을 향해, 아는 자는 파멸할 수밖에 없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갈 수 없는 비밀을 향해 곧장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조류는 우리를 남극으로 데려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추정이 오히려 더 그럴듯 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병 안의 수기' 중에서, p.55

 

어릴 때부터 온순하고 인간적인 성품으로 알려졌던 나는 특히나 동물들을 좋아했다. 많은 시간을 동물들과 함께 보냈던 나는 결혼을 해서도 다양한 반려동물들을 집에 들였다. 새들과 금붕어, 개와 토끼, 원숭이, 고양이였는데, 그 중에서도 놀라우리만치 영리했던 고양이 플루토가 특히 나를 따랐다. 그런데 몇 년 뒤 나는 폭음을 일삼으면서 나날이 성격이 괴팍해져, 아내에게도 폭언과 폭력까지 휘두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얼큰히 취해 집에 온 나는 고양이에게 사악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고, 여러 방법으로 녀석을 괴롭히다 결국 죽게 만들고 만다. 하지만 얼마 뒤 플루토와 비슷한 검은 고양이를 집에 들이게 되고, 자신을 노골적으로 따르는 것에 반감을 느껴 점자 증오감을 불태우게 된다. 나의 극악한 악행은 점점 최악의 결말을 향해 가는데, 그야말로 광기가 불러온 끔찍한 이야기였다.

 

 

포의 대표적인 단편 중 하나인 <검은 고양이>는 작품을 실제로 읽어 보지 않은 이들조차 내용을 알만큼 유명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고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최초로 선보인 작품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사랑받는 장르인 도메스틱 스릴러, 심리 스릴러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 이렇게나 오래 전에 사용되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자신이 지극히 광적이고 야만스러운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믿어주기를 바라지도 간청하지도 않겠다는 말로 서두를 연다. 자신에게는 공포 그 자체인 사건들이지만 참혹하다기보다 기괴하게 비칠 일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독자들은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지만,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나'의 행동을 쉽사리 이해하기도 어려우니, 그 비정상적이고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모습에서 점점 불편함과 오싹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재미있는 건 작가인 포는 실제로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가 이렇게나 거리낌 없이 고양이를 죽이고, 무시무시한 존재로 만들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내 상상력이 깨어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공기 중의 안개탓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방 안에 감도는 왠지 모를 어스름 때문이었나, 베르니스의 몸을 감싸는 늘어진 잿빛 옷자락 때문이었나. 베르니스의 윤곽은 몹시 가물거리며 불분명해 보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단 한마디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싸늘한 한기가 온몸을 휘젓고,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짓눌렀다. 거센 호기심이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 '베르니스' 중에서, p.347

 

에드거 앨런 포의 삶은 비극적이고, 암울했으며,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마흔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수 세기 동안 그의 작품들은 여러 장르와 분야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왔다.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는 한 해의 최고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기리는 '에드거 상'을 만들었고, 숱한 호러, 미스터리, SF 작가들이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는 그 선명한 이미지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각인되어 한동안 길에서 검정 고양이만 보아도 피해갔었다. 짧은 분량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얼마나 섬뜩하고 오싹했던지 무서워서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포의 작품들은 놀랍도록 시적이었다. 어둡고 그로테스크했지만, 그럼에도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그의 소설들은 시처럼 간결하면서도 복합적으로 읽혔고, 그의 시들은 소설처럼 하나의 서사를 가지고 눈앞에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번에 호러컬렉션으로 다시 만나게 된 포의 작품들 역시 그러했다. 그의 어두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와 우리를 강력하고 완벽하게 미지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이 책을 읽는 누구든, 에드거 앨런 포의 마법에 홀리게 될 것이다.

 

고전문학을 현대적인 시각과 시대 정신을 담아 선보이는 윌북 클래식 신작이다. 시즌 1 걸클래식 컬렉션, 시즌 2 라이트 컬렉션, 시즌 3 환상 컬렉션에 이어 첫사랑 컬렉션이 나왔고, 이번에 선보이는 컬렉션의 주제는 '호러'이다. 모든 걸 끌어낼 수 있을 만큼 근원적이나 인간을 가장 연약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감정 ‘공포’를 이야기 속에 녹여 세기의 명작이 된 세 편의 고전<프랑켄슈타인>,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드라큘라>를 수록했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는 그의 작품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작을 비롯해 섬뜩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단편 25편이 수록되어 있다. 윌북 클래식 시리즈는 '번역'에 중점을 두고 있어 지금 우리 시대가 걸어가는 방향에 발맞춘 번역을 통해 다시 읽어 보는 고전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고전 호러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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