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러시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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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는 옆에서 "굉장해!"라며 조그맣게 환성을 질렀다. 구리바야시도 고개를 들었다. 바로 눈앞에 광대한 스키장이 펼쳐져 있었다. 산은 높고 곤돌라가 아주 먼 곳까지 이어져 있다.
"오호, 엄청나네......" 구리바야시도 절로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시야가 미치는 한 온통 눈밭, 은백색의 세계였다. 20여 년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스키장은 이런 곳이었지. 일상과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p.88

 

다이호대학 의과학연구소에 협박장이 도착한다. 그들이 비밀리에 배양하고 있던 탄저균, 통칭 ‘K-55’를 자신이 훔쳤으며, 특정 장소에 보관했으니 3억 엔을 준비하라는 요구였다. 첨부된 두 장의 사진에는 눈 밑에 케이스를 묻으려고 하는 순간과 나무에 테디베어가 매달린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범인은 최근에 연구소에서 해고된 구즈하라가 분명했고, 그가 요구한 기한은 이틀, 그 안에 사진의 장소가 어디인지, 방향 탐지 수신기인 테디베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다. K-55의 존재 자체가 극비였기 때문에 경찰에 알릴 수는 없었기에, 장소를 찾든 3억 엔이라는 거금을 준비하든 해야 했다. 그런데 더 고민하기도 전에 경찰로부터 연락이 온다. 구즈하라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자, 이제 범인이 죽어 버린 상황에서 한정된 단서만으로 K-55를 찾아서 회수해야만 했다. 눈이 녹아 버린다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살상 무기가 되어 버릴 테니 말이다. 연구원 구리바야시는 스노보드를 즐겨 타는 아들의 도움으로 사진에 찍힌 장소가 사토자와온천 스키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구리바야시 말고도 K-55의 존재를 알고 그의 뒤를 쫓아 스키장으로 향하는 이가 있었다. 과연 구리바야시는 주변이 온통 은빛 세상인 엄청난 규모의 스키장에서 무사히 K-55를 찾아낼 수 있을까. 시작부터 범인이 사고로 죽어버린다는 허를 찌르는 전개로 시작된 이 작품은 가볍고 경쾌하게, 긴장감 넘치고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며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반전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말도 안 돼. 거짓말 같아." 치아키가 툭 내뱉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구리바야시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런 한심한 일이 있을까? 엄청난 협박 사건을 일으켜놓고 중간에 트럭에 치이다니."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죠. 거짓말 같으면 인터넷으로 찾아봐요. 간에쓰 혼조고다마IC 부근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사망 사건. 죽은 사람은 구즈하라라는 남자고."           p.159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국내에는 <질풍론도>라는 제목으로 오래 전에 출간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운 번역과 표지로 출간되면서 제목도 변경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스노보드와 컬링 등 동계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 온 작가이다.  그러니 순백색의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인 '설산 시리즈'를 쓴 것도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백은의 잭>으로 스키장에 설치된 폭발물을 소재로 영화 같은 이야기를 보여주었고, <화이트 러시>에 이은 세 번째 작품 <눈보라 체이스>에선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주인공과 형사들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그렸고, 네 번째 작품 <연애의 행방>에서는 스키장을 배경으로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를 보여준다.

 

겨울에 읽기에 딱 좋은 시리즈 네 작품 모두 출간되어 있으니, 하나씩 골라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설산 시리즈'는 스키장의 광대한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시리즈로 내용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서 각각 따로 읽어도 괜찮다. 패트롤 대원인 네즈를 비롯해서 공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캐릭터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스키장을 간접 체험하면서 눈부신 설원을 종횡무진 활주하는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책을 다 읽는 뒤에는 자연스럽게 스키장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겨울이라는 계절감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미스터리를 찾고 있다면, 이 시리즈를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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