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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의 거장들 - 매 순간 다시 일어서는 일에 관하여
데비 밀먼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평점 :
세상의 시간을 다 가진 것처럼 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드니까, 이를테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풍선이 빵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알 수 없다는 걸 실감하면서, 이른바 한 번뿐인 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어릴 적 배웠던 온갖 교훈들을 떠올렸죠... 괜찮아지기 위해서 저는 정말 많은 규칙들을 잊어야 했어요. - 앤 라모트, p.104
데비 밀먼은 팟캐스트 <디자인 매터스>를 16년이 넘도록 운영하며,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대중 지식인, 예술가, 작가, 창작자들을 만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팟캐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까지 누적 450회 이상의 인터뷰를 해왔고, 그 정수를 단 한 권에 책에 담았다. 책은 마치 백과사전처럼 튼튼한 양장본에 엄청난 두께를 자랑한다. '멘탈의 거장들'이라는 제목처럼, 멘탈이 흔들릴 때 제대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붙들어 줄 것만 같은 책이다. 데비 밀먼은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작가 록산 게이의 반려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도 록산 게이가 애정 어린 서문으로 왜 데비 밀먼이 독보적인 인터뷰어인지 알려주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계의 슈퍼스타 밀턴 글레이저, 그래픽 노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앨리슨 벡델, 대중문화 안에서 열풍을 일으킨 시인 아릴린 마일스, 마케팅계의 거장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세스 고딘,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사랑받는 글쓰기 고전 <쓰기의 감각>의 작가 앤 라모트, 혁신의 아이콘 팀 페리스, 세계적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 등 자신의 분야에서 큰 획을 그었고 지금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들의 솔직하고, 가감 없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나가잖아요.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하나 만들고 그걸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결국 그런 이미지가 굳어지게 되고요. 하지만 우리는 모순덩어리여서 다른 면들도 가지고 있죠. 모든 인간은 모순되는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보여주기는 싫어해요. 저는 제가 부끄러워하는 면들을 드러내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p.549
저자인 데비 밀먼은 지난 20여 년간 버거킹, 펭시, 하겐다즈, 네슬레, 질레트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전략가로, 아트 디렉터로 일해왔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성공한 사람이 되었지만, 자신의 삶에 의미와 목적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온통 실무적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자신이 창의성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창의력 권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공이 보장된 회사를 선택하는 대신 팟캐스트를 열었고, 이제는 '커뮤니케이션 대가'가 되어 크리에이터들의 멘토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분야의 거장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을 읽다 보면, 인터뷰 대상의 신뢰를 얻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대화를 끌고 가는 좋은 인터뷰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예술가, 작가, 대중 지식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것 자체로도 매우 흥미롭지만, 데비 밀먼이 어떤 질문을 해서,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이끌어 내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구성한 감각적인 내지와 예술적인 캘리그래피로 완성한 인터뷰 에필로그가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 준다. 수록된 사진들이 전부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감각의 사진들이 인터뷰 내용만큼이나 훌륭하니 말이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거장들,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0.1% 상위 대가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자기 계발서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수식이 아깝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대화들로 가득하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숱한 거절을 마주하고, 새로운 열정에 사로잡히고, 끊임없는 노력과 불굴의 희망으로 매순간 성장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화보 같은 사진과 감각적인 디자인, 생생한 현장감을 살린 문장들로 버무려진 56편의 인터뷰를 만나 보자. 묵직한 두께만큼이나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자기 계발서의 끝판왕으로 새해를 시작한다면, 당신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