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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0월
평점 :
우리는 살아 있는 편을 선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지만, 질병의 종식이란 있을 수 없는 환상이다. 손택의 저술에 크게 감탄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질병을 절대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죽음에 완전히 저항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 온당할 것 가다. 아마 애커의 선택 가운데 몇 가지는 보기보다 현명했을 것이다.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있음을 아는 것, 병에 걸린 것을 그 이전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기 위한 기회로 삼는 것이 그렇다. p.87
<외로운 도시>, <이상한 날씨>에 이은 올리비아 랭의 '자유와 연대' 3부작 완결편이다. 영국 대표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은 회고록과 비평을 유연하게 오가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특히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한 《이상한 날씨》에서 펼친 대담한 논의들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기본권조차 위태로워진 시대를 읽는다. 인간이 누려 마땅한 것들을 환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연대할 것을 촉구해온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치열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다.
올리비아 랭은 2015년 난민 위기 때 이 책을 쓰기 시작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집필을 마쳤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몸'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으니, ‘다른 몸’에 가해진 억압과 ‘모든 몸’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자유를 환기하는 이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올리비아 랭은 이 책에서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 운동가, 사상가인 '빌헬름 라이히'를 이야기의 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20세기의 가장 괴상하고도 또 가장 예지적인 사상가였던 그는 프로이트의 애제자이기도 했다. 라이히를 안내자로 삼아 20세기를 관통하는 여정에서 수많은 다른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들의 사유와 투쟁을 만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을 원했다고 말하라. 그것을 위해 싸웠다고 말하라. 그리고 그것이 파탄이 났다고, 사람들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고, 죽었다고 말하라. 자유가 꿈이었다고 말하라.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몸의 종류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증오받지 않고 살해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말하라. 몸이 힘이나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라. 해악이 없는 미래를 상상했다고 말하라. 당신이 실패했다고 말하라. 그 미래를 실현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라. p.372
1973년 3월 14일, 한 젊은 여성이 아이오와 대학 기숙사 자기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봄방학 때였고, 스무 살이었던 그녀는 얼굴과 흉부를 구타당하고, 강간당했고, 질식해 죽었다.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젠더 문제와 성적 자유에 관련된 태도가 다시 한번 급속히 변하던 시기였다.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대법원에서 통과된 지 두 달도 안 되어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신체 내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온갖 폭력과 강간과 구조적 성차별과 배제와 가정 폭력과 학대와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기였다. 물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이다. 여성해방운동이 다루는 몸의 범주에 관한 것들과 저항하고 맞서 싸우는 방식들에 대해서 깊이 있는 사유를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질병과 성, 저항과 감옥 등 몸의 여러 다른 측면들을 살펴보고, 신체적 자유를 이루고 제약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유와 연대 3부작'의 <외로운 도시>, <이상한 날씨>가 에세이처럼 쉽게 잘 읽혔던 것에 비해, 마지막 작품인 <에브리바디>는 인문학적인 사유가 더 풍부해 읽는 것이 결코 수월하진 않다. 그럼에도 올리비아 랭의 빛나는 통찰력이 가장 뚜렷하게 보여지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에,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올리비아 랭은 말한다. 우리의 상처가 켜켜이 쌓인 이곳 지옥에서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유를 향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관통하며, ‘다른 몸’에 가해진 억압과 ‘모든 몸’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자유를 환기하는, ‘자유와 연대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치열한 이야기! 지금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