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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일한 하루 - 쉽지 않지만 재미있는 날도 있으니까
안예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8월
평점 :
그래서 이번 1년은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살아만 있어도 칭찬을 받아 마땅한 나날들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창작의 하늘 아래 모든 나라의 경계선이 한 군데로 모이는 지점에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모자란 부분을 채워나가려고 한다. 실천을 하지 않은 결심만 해도 수백 개는 될 테지만, 결심을 한다는 것 자체도 실천의 일부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아직 단추는 채우지 않았지만 옷에 몸을 끼워 넣긴 한 거라고. 그런데 짝을 잃은 결심들은 어디로 갈까? '작심삼일의 배'에서 태어난 그 수많은 결심들은? p.55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첫 등장할 때도 그랬지만, 또래 가수들과는 다르게 독보적인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가수이다. 창법도 일반적인 가요의 그것이 아니라 타령에 가까운데다, 작곡, 작사, 편곡까지 혼자 다하는 그녀의 음악 또한 대중적인 방향과는 다르게 특유의 컬러가 있다. 오죽하면 팬들이 음악 장르 자체가 안예은이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트곡이 몇몇 있는데,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멜로디와 분위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걸 보면 그야말로 마성의 매력을 가진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안예은은 스스로를 '창조적 모방도 하지 못하고, 자기의 것도 없는, 그저 '카리스마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아류'로 나 자신을 정체화한 채 쭉 살았다'고 한다. 모방도 잘 못했고, 자신이 쓴 곡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곡은 계속 썼다고. 사실 그 지속가능함이 가장 어려운 것이고, 매우 중요한 지점일 것이다. 꿈 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이다. 게다가 스스로 태어나서 한 번도 특이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지구 끝까지의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의 사고방식치고는 독특하기 그지없다. 암튼,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개성있어 보이는 인물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 이야기와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마음가짐 등이 경쾌하고, 발랄하게 그려진다.
너무나도 악랄한 상황이 닥쳤을 때, 도저히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때, 일이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올 때, 모험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한다. 나는 사실 주인공보다는 조연을 더 좋아한다. 대장보다는 넘버 투가 멋진 법이다. 최후에는 대장을 도와 멋진 죽음을 맞으며 그 만화의 명대사로 길이길이 꼽히는 대사를 날리는. 아무튼 나는 흑백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폐허가 된 거리 한가운데에서 짓궂은 웃음을 짓는 캐릭터 옆에 "쉽지 않네. 가보자고" 라는 대사를 말풍선에 넣는다. p.175
책 표지 뒤편에 추천사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장의 멘트가 있었다. 알고 보니 대체 불가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라는 이름 뒤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선천성 심장 질환으로 가슴을 여는 수술을 다섯 번이나 했고, 지금까지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던 아이가 서른한 살이 되도록 살아 있는 것부터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데뷔 이후 겪은 우울증으로 인해 1년 동안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우울증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 당당하게 이겨낸다.
그럼에도 당장 5초 뒤에 죽어도 상관없다고 할 만큼 이승의 삶에 미련이 없다고.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살아보려고, 일단은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으니 자신의 삶을 풍자와 해학으로 적극 미화시켜야 한다는 말이 뭔가 웃기면서도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번 생에 미련은 없지만 태어났으니 재미있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것, 쉽지는 않지만 힘든 날에도 웃음을 추구한다는 것, 그 솔직함이 반짝반짝 빛나는 글들이었다. 인생은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이를 악물고 주머니 속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더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한다는 그녀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씩씩한 삶까지 가는 길이 참 멀고 험하지만 해볼 만하다고, 굳이 멋지고 비장할 필요 없이, 어떻게든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