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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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은 어째서 아직 살아 있는 것입니까?"
그 의문은 간베에의 가슴을 줄곧 답답하게 짓눌렀던 게 틀림없다.
구로다 간베에는 오다의 사자로 아리오카성에 왔다. 무라시게는 간베에를 쫓아낼 수도 있었고, 참수할 수도 있었다. 심기를 거스르는 사자는 코나 귀를 베어 돌려보내는 일도 세상에는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무라시게는 그 어느 방법도 선택하지 않고 간베에를 붙잡아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p.121

 

2021년, 일본 문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작품, 요네자와 호노부의 <흑뢰성>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기나긴 수상 이력으로도 화제였는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으며, 제166회 나오키상과 제22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등을 수상하며, 모두 합쳐 9관왕을 했다. 아마도 전무후무한 기록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오키상과 주요 5개 미스터리 부문을 석권한 작품은 역사상 <흑뢰성>이 유일하다고 하니 말이다. 이 작품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첫 장편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 패권을 눈앞에 둔 1578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오다 노부나가의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는 그해 10월 느닷없이 반역을 일으키고, 근거지인 아리오카성에서 저항을 시작했다. 사실 잘 나가던 다이묘였던 그가 왜 모반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이유가 없어 여러 설이 분분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무라시게가 노부나가에게 갑자기 반기를 들었다는 것, 이 뜬금없는 반란에 경악해 간베에를 보내 회유하려 했으나 무라시게는 그를 1년 이나 토굴에 가두어 버렸다는 것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바로 이 1년 간의 시간에 대해 소설적 상상을 시작했고, 이 작품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지하 감옥으로 향할 때 무라시게는 언제나 혼자였다. 아리오카성에 문제가 생길 때 무라시게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아는 이는 무라시게와 간수와 지하에 갇혀 있는 구로다 간베에뿐이다. 벌써 몇 번이나 이렇게 계단을 내려갔을까? 성의 함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가 몇 차례나 있었다. 그중 몇 가지는 무라시게가 장수들에게 지시해서 해결했고, 또 몇 가지는 간베에의 지혜로 피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이 가을이다.           p.434

 

역사에 기록된 사건을 입체적으로 잘 재현하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진짜 재미는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그 행간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무라시게가 왜 오다에게 반기를 들었는지, 그리고 간베에는 왜 죽이지 않고 가뒀는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시간들은 여전히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기괴한 사건과 불가능한 범죄를 통해 역사의 틈을 재구성했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잘게 쪼개진 수많은 각 세력들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던 어지러운 시대였다. 난세가 늘 그렇듯 하루가 멀다하고 지역의 지배자가 바뀌었으며, 잘나가던 가문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기도 하고, 별볼일 없던 세력이 순식간에 급부상하기도 했다.


 

 

사람을 베고 태워 죽이는 일이 흔했던, 그야말로 일상이 전쟁인 시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살벌한 세계였다. 그 와중에 아리오카성안에서는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겨울에는 죽이지 않고 살려둔 인질 소년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누군가에게 살해되고, 봄에는 야습 후 뜻하지 않게 적장을 해치웠는데 수훈을 밝히기 위한 과정에서 가져온 머리가 바뀌는 일이 생긴다. 여름에는 밀사였던 고승이 누군가에게 살해되면서 그에게 맡겼던 보물이 사라지고, 다시 가을이 된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라시게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나고 성의 함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성의 지하 감옥에 내려가 간베에를 만나 지혜를 구했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적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뢰인과 안락의자 탐정이라는 구도로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무라시게는 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성이 견고한 것은 해자가 깊고 성루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버티고 있는 장졸들이 성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람이 곧 성이기에, 장졸이 대장의 기량을 의심하는 성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무라시게는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대장이 되기 위해서 불가사의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미스터리물보다는 역사소설에 가깝다. 트릭이나 반전 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라는 명목 하에 싸우다 죽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인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거짓말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난세의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선과 악, 죄와 벌, 사회 속의 개인과 조직 내에서의 윤리에 대해서 시대를 뛰어 넘어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묵직한 서사의 힘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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