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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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에게 이러쿵저러쿵 지시하던 그때 간바라의 눈 속에는 확실히 어둠이 있었다. 시커먼 그것을 들여다보면 그곳에서는 미오와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상식이나 올바른 생각 따위 전혀 통하지 않는다. 온몸에서 그런 분위기가 오라처럼 풍겨 나왔다.
야미하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을 흩뿌리고, 강요하고, 타인을 끌어들이는 야미하라. 마음과 눈 속에 도사린 어둠이 밖으로 나와 주변을 물들인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둠으로 휘두르는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p.115

 

고등학교 2학년인 미오네 반에 어느 날 전학생이 온다. 차이나칼라 재킷 교복을 입은 남학생은 팔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했다. 주변에 무심해 보이는 전학생은 이상하게도 첫날부터 미오를 자주  쳐다 봤다. 친구들은 전학생이 미오에게 반한거 아니나며 호들갑스럽게 말하지만, 미오는 잘 모르는 학생의 시선이 불편하기만 하다. 선생님은 반장인 미오에게 전학생의 학교 소개를 부탁하고, 이런 저런 장소를 알려 주는데 갑작스럽게 "오늘 집에 가도 돼?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미오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피하지만, 전학생의 부담스러운 행동은 계속 되는데... 전학생의 정체는 뭘까. 대체 왜 미오에게 이상한 행동을 자꾸 하는 걸까.

 

 

프리랜서로 일하는 아나운서인 리쓰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자원봉사 활동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그 동안은 일이 바빠 좀처럼 시간을 내기 힘들었는데, 이번에 봉사활동 중에 '낭독 위원회'라는 활동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지정된 장소에 들어선 순간부터 참석한 걸 후회하기 시작한다. 모인 사람들이 이미 너무 친근하게 허물없는 말투로 지나치게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전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무리들 속에서 유일하게 말을 건네준 여자는 부담스럽게 질문을 해대고, 귀를 의심할 정도로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때 스타일 좋고 자신감 넘치는 한 여성이 리쓰를 그 상황에서 구해주는데, 그녀는 남편과 함께 리쓰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한 주역이었다. 그렇게 리쓰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과 친분을 맺게 되는데, 그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불편하고,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집에 드나들었던 모양이야. 소문의 진위는 정확하지 않지만 놈들은 아마 학교 행사나 주부들 사이에 끼어들어 주위에 조금씩 어둠을 강요했을 거야.”
어둠을 강요한다는 표현에 기억이 꿈틀거렸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휴대폰. 무서웠던 수많은 LINE 메시지. 상대의 멈추지 않는 정체 모를 폭력 같은 언어. 내 잘못이라고 건강하지 못한 마음으로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던 그 감각…….          p.399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은 <거울속 외딴성>과 <호박의 여름>만 읽어봤는데도, 어느새 믿고 보는 작가가 된 것 같다. 특히나 이번에 만난 작품은 츠지무라 미즈키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본격 호러 장편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전부터 호러 장편 소설을 집필하고 싶었다고 하는 그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경험해 봤을 만한 불쾌감과 공포, 꺼림칙한 악의, 본인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에 대해 고민하다 '야미하라'에 다다르게 된다. 작가가 만든 '야미하라'라는 조어는 자기 정당화를 방패 삼아 자신의 '어둠'을 타인에게 강요해 불쾌감을 주는 일종의 폭력적인 행위를 뜻한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아파트 단지의 이웃과, 회사의 상사와의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을 당하거나, 뭔가 ‘쌔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요한 거리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그럴 때 느끼게 되는 공포와 스트레스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지나치게 상대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태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분위기, 사람들 속에서 시선 받기를 원해 보여지는 것에만 신경쓰는 성격, 아랫 사람을 무시하고 시종일관 트집을 잡고 설교를 해대는 갑질, 자신이 옳다고 믿는 행위를 관철시키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밀어 붙이는 가스라이팅 등 이 작품 속 에피소드들은 모두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라 더 오싹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귀신이니 저주, 좀비 같은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긴장감과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해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숨가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은 소설일 뿐이고, 실재하는 이야기가 하지만, 야미하라는 이 책을 읽는 누구의 곁에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에 이르면 각각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그야말로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또 다른 차원의 공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무시무시한 경험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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