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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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리의 포인트는 오징어 살을 내장으로 간하는 거야. 그런데 오징어 본래의 맛과는 좀 다른 것 같아. 아이디어랄지, 기술이랄지, 그런 것의 결정체 같달까.”
“뭘 그렇게까지.” 나가에가 웃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요리인 건 사실이야. 실제로 오징어를 손질할 때 한 번 내장을 빼잖아? 그다음에 간하는 단계에서 다시 몸통에 집어넣고. 일단 헤어졌다 중요한 순간에 다시 딱 합치는 느낌이랄까.”
제법 정확한 설명이다. 무슨 멜로드라마처럼 들리긴 했지만.       p.91~92

 

나쓰미와 나가에 부부는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로 셋 다 술을 무척 좋아해 틈만 나면 같이 모여 술을 마시곤 했다. 나쓰미가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인 겐타까지 무리에 끼어 즐겁게 지내곤 했다. 그러다 나가에가 미국의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일본을 떠나면서 모임이 잠시 뜸해졌다. 그러다 최근에 나가에 부부가 그곳에서 태어난 사키를 데리고 귀국하면서 다시 예전의 술 모임이 부활하게 되었다. 나쓰미와 겐타의 아들 다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나가에 부부의 딸 사키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 자연스레 부부의 모임에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이들 두 부부의 모임은 맛깔나는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술로 배를 채우고, 각자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씹을 때마다 육즙이 줄줄 흘러나오는 로스트 비프와 혀에 닿는 과즙 느낌이 대단히 강렬한 나파밸리 와인, 독특한 감칠맛이 입안에 확 퍼지는 연어 술지게미 절임과 개운한 맛이 나는 고급스러운 쌀소주, 향긋한 맛이 입안에서 톡 터지며 퍼지는 오징어내장구이와 또렷하고 깔끔한 맛의 사케가 조합이다. 여기까지가 겨우 에피소드 세 개의 음식이고, 아직 조합이 네 가지나 더 남아 있으니 나머지는 직접 책을 통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와 안주와 술의 기막힌 페어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집도 다코야키에 마요네즈는 뿌리지 않는 편이다. 소스와 가다랑어포, 김 가루를 뿌린다. 거기에 시치미 조미료도 살짝.
다코야키를 입으로 배달했다. 기름을 넉넉히 써서 그런지 표면이 바삭바삭. 떡 덕분에 속은 말랑말랑. 동시에 튀김 부스러기 덕분에 가벼운 식감. 다코야키를 삼킨 다음, 맥주를 흘려 넣었다. 열기와 소스의 매콤함이 싹 씻겨 나가면서 입안에 상쾌한 쓴맛만이 남았다. 그래, 이거야말로 어른의 식사다.       p.198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한밤의 술과 음식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주변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말도 나오게 마련이고 말이다. 소소한 가십거리 정도의 이야기들이 미스터리로 등장하지만, 그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근사한 음식과 곁들여져서 나오니 아주 흥미진진하다. 상사에게 선물 받은 커다란 안마의자 덕분에 결국 폐가전 회수 비용까지 들여가며 손해를 본 부부의 이야기, 쌍둥이가 각자 하루씩 어긋나게 일과를 보내는 이유, 미혼인 상태에서 출산하고 2년이 지나서야 결혼해야 했던 사정, 아이의 명문 중학교 입시를 대하는 엄마의 비밀 등등...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어딘가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되는 각자의 사정들을 두 부부가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추측해 나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지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맵싸하고 고소한 닭날개 조림과 비곗살의 감칠맛이 입안에 확 퍼지는 삼겹살 구이, 표면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다코야키, 녹아내린 치즈와 햄의 맛이 기막힌 핫샌드위치 등 음식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하고, 없던 입맛도 돌게 하는 작품이니 말이다. 이 작품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전작인 <나가에의 심야상담소>의 속편이기도 하다. 전작에서도 각각 한 쌍의 술과 안주가 등장하는 일곱 편의 에피소드가 나왔다. 당시에 활약했던 미식가 나가에가 12년 만에 다시 한번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작품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이다. 물론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번 작품을 즐기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시모치 아사미 특유의 편안하고, 아늑한 미스터리 키친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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