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은수를 텍스트T 3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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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세계에서는 늘 위화감이 있었어요.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막연한 불안감과 불쾌함을 항상 느꼈죠. 처음 여기 왔을 때...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몰라요. 아름다우면서 그리운 세계였거든요.... 당신도 그렇지 않아요?"
아하, 지아키는 갑자기 이해했다. 왜 자신이 다양한 것에 탐구심을 가졌는지를. 줄곧 불안했다. 원래 세계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 '어떤 은수를' 중에서, p.105~106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십년 가게>, <신비한 고양이 마을>, <비밀의 보석 가게 마석관> 등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판타지 동화 시리즈로 유명한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집이다. 위즈덤하우스 청소년 문학 ‘텍스트 T’의 세 번째 권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청소년 독자에서 성인 독자까지 아우르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강렬하고도 기묘한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어떤 은수를>과 <히나와 히나>, 그리고 <마녀의 딸들>이다. <어떤 은수를>에는 은빛 짐승이라는 뜻의 은수라는 특별한 존재가 등장한다. 은수는 돌의 알에서 태어나 주인이 될 인간이 바라는 대로 성장하는 돌의 정령이자, 생물과 광물의 중간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어느 날 재벌 노인이 다섯 명의 남녀를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 ‘은수’의 알을 주고 가장 뛰어난 은수를 키운 자에게 전 재산을 남기겠다고 한다. 성격도, 배경도, 욕망과 제각각인 다섯 명은 각자의 목적과 이유를 위해 은수를 키우게 되는데, 과연 누가 재산을 차지하게 될 것인지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히나의 본성을 안 순간, 요키 안에서 무언가가 죽었다. 믿었던 마음이 가루가 되고 말았다. 죄인이 되어 외딴 섬에 갇힌 것보다도 그 때문에 더 용서할 수 없었다.
밉다. 미워 죽을 것 같다. 반드시 복수할 테다.
오늘날까지 그 결심을 곱씹으며 견뎌 왔다.           - '히나와 히나' 중에서, p.230

 

<히나와 히나>에는 연인 히나의 배신으로 죄인이 되어 외딴 섬의 등대지기로 유배된 한 청년이 등장한다. 오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혼자 외딴 섬에 남겨져 고독과 공포를 견뎌내야 하는 그는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히나의 환영에 괴로워한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과 망령으로 인해 그는 슬프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마녀의 딸들>에서는 마치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커다란 저택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어린 소녀에게는 이상한 규칙들이 있었다. 밤이 되면 저택에 굵은 쇠창살이 내려와 순식간에 상자처럼 변해 아침이 올 때까지 절대 열리지 않고, 엄마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절대 지하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시나무 울타리 너머로는 절대 가면 안되었고, 밤이 되기 전에 꼭 저택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엄마가 사실은 마녀였고, 자신이 엄마의 여덟 번째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는 무사히 바깥세계로 탈출할 수 있을까.

 

 

사실 히로시마 레이코의 기존의 작품들은 아동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읽기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옴니버스 단편들이었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 더 좋고, 어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만한 작품들이라 더욱 어린이 판타지 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조금 연령대를 높여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판타지 문학이지만, 성인 독자들이 읽기에도 오싹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이라 일반 판타지 소설들을 더 발표해주어도 좋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나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집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기존의 판타지 동화 시리즈에서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어린 주인공들을 등장시켜왔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의 제대로 된 끝판왕을 보여준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추악한 탐욕, 사랑과 증오의 감정들을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독특한 일러스트들이 수록되어 있어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살려주고 있기도 하다. 히로시마 레이코의 작품들을 좋아했다면, 혹은 궁금했지만 아동 대상이라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면, 이번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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