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평점 :
절판


 

 

"시마즈를, 죽여, 버릴게요."
아무 말없는 남편한테 다시 한번 같은 말을 했다.
"저, 시마즈를, 죽일게요.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요."
다카세는 그제야 부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았다. 허탈하게 웃었다. 자포자기에 빠져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미쓰코 눈은 진지했다.
"시마즈에게 죽음을 맛보게 하고, 죗값을 치르게 하겠어."        p.125

 

고급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살해 동기는 남녀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고, 흉기는 룸서비스 때 배달된 식사용 나이프로, 피해자는 가슴을 찔려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 손상에 의한 과다출혈이었고, 거의 즉사였다. 나이프에서 의뢰인인 피고, 살해당한 피살자와 호텔 직원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 검출되었으며 버려진 목욕가운에서도 살인자의 의뢰인의 땀으로 보이는 체액도 검출되었다. 이러한 사항을 바탕으로 검찰은 불륜 사이였던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다, 의뢰인이 식사용 나이프로 피해자를 찌른 것으로 추정했다. 누가 보더라도 동기와 증거가 명백한, 살인자로 보이는 의뢰인의 의뢰를 받은 것은 바로 사가타 변호사이다. 그가 이 사건 의뢰를 받아들인 것은, 이 사건이 단순한 치정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사가타는 법정에서 자신이 검사 시절 모셨던 부장의 부하인 젊은 여검사와 대치하며 사건 이면에 감추어진 진상을 파헤쳐 나간다. 그리고 지금 이 사건의 배경에 7년 전 벌어졌던 교통사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현재 공판이 벌어지고 있는 법정과 과거 교통사고의 피해자 가족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사가타는 검사 시절부터 검찰조서에 적힌 동기 말고, 털어놓기 껄적지근한 복잡한 감정과 사정을 파악하는 데 유능했다. 경찰이 수사한 내용만 조서로 읽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 현장에 직접 나가서 발로 뛰는 검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피의자가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며,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부인 재판'을 맡은 것이다. 그것도 증인, 증거, 동기 등 모든 것이 의뢰인이 범인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가리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 과연 사가타는 법정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억울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놓고는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는 범인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죄인을 벌하지 않는 법률을 증오했다. 처음에는 그런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몰랐다. 그러다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방법을 찾아냈다. '아무도 죄인을 벌하지 않는다면 내가 죄를 처벌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자신이 경험한 말도 안 되는 고통을 이제는 그 누구도 겪게 하지 않으리라. 그 어떤 이유가 됐건 죄를 저지른 자는 처벌받아야 한다.       p.146

 

사실 평범한 법률 미스터리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중반 부분까지 피고인과 피해자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의 전반적인 개요가 소개되어 있는 상태라, 대부분의 독자들이 누가 피고인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짐작하면서 읽었을 텐데.. 아마 후반부에 깜짝 놀라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스토리라서 자연스럽게 누가 피해자일지 보이는 구성이기도 했고, 변호사와 검사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배경을 통해 짐작되는 캐릭터의 성격 또한 같은 방향으로 분위기를 흐르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부분의 재판 결과 역시 예상에서 살짝 빗나가면서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고독한 늑대의 피>, <반상의 해바라기>, <달콤한 숨결>로 만나왔던 유즈키 유코의 초기작이다. 국내에는 2011년에 소개되었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유즈키 유코는 <최후의 증인>에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변신한 사가타 사다토를 주인공으로 후속작인 3편의 검사 시리즈를 이후에 출간했다. <검사의 마음>, <검사의 길>, <검사의 신의>로 이어지는 이야기도 사법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유즈키 유코의 기존 작품들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강했다면, 이번 작품은 조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휴먼 드라마적인 요소가 있어 인상적이었다. 이후에 사가타 시리즈로 작품이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검사 시절의 사가타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소재로 시리즈가 세 편이나 이어진다고 하니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법률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유즈키 유코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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