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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평점 :
우리는 일과 음식, 대화, 잠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서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루하루의 자연스러운 흐름, 작은 도전들, 기쁨과 좌절이 모두 우리의 지평선이 된다. 시간은 그 자체로 진정제가 되어 뻔한 현실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 우리 존재의 모든 것, 만지는 것, 씹는 것, 소유하고, 잠자리를 갖는 것,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모두 바로 여기 존재하고, 우리의 느낌에서 시작해서 생각들로 끝난다. 카를라에게 시간을 빼앗으면, 그 가혹한 현실만이 남는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고, 이게 바로 현 상황이다. 우리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것을 피하는 일에 한평생을 바친다. p.180~181
유럽 최대 은행 총장의 아들이 납치되었다 시체로 돌아온다. 호화로운 저택의 가죽 소파에 있는 십대 소년은 빈 껍데기 상태였다. 범인이 경동맥에서 피를 모조리 뺐고, 사인은 과다 출혈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철통 보안이 되는 장소에 들어왔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살인자는 부모에게 연락해 납치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부모는 경찰이 아니라 가장 윗선에 연락했다. 소년이 사라진 지 1시간 반 만이었다. 하지만 그리고 며칠 뒤 소년의 시체가 마술처럼 부모 집 거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단서도 없었고, 집 안 어디에도 신분을 알 만한 어떤 흔적도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글로벌 기업의 상속녀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80억 유로를 물려받게 될 상속자를 납치한 범인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딸을 다치게 할 거라고 경고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분명 범인은 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요구사항을 밝혔는지만 은행 총장과 기업 회장 모두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돈이 목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범인의 이상한 행동과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들로 인해 수사는 진전이 없다. 모두가 속셈이 있는 듯 입을 닫으려는 상황에서 범인을 어떻게 추적해야 할까. 경찰은 물론 언론에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되는, 범인의 협박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전대미문의 사이코패스 괴물로부터 이들은 상속녀를 무사히 구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일 또 다른 날이 있을 줄 알고 하고 싶었지만 미루었던 모든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안녕히 계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어머니를 생각한다. 30미터. 30미터 더 나갔다. 다음 발이 그 줄을 무사히 넘어갈 건지 아니면 두 개의 적외선 센서의 회로를 끊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발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이라는 녹슨 통 안에 있다 보니 확신이 사라졌다. 의무와 명예, 선함은 이제 아무 의미도 없이 쌓인 말과 글에 불과했다. p.512~513
사건의 해결을 위해 3년 만에 전설의 ‘붉은 여왕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된다. ‘붉은 여왕 프로젝트’는 유럽 연합의 각 국가에 있는 중앙 부서 및 특수 단위에서 연쇄 살인마, 테러리스트 들을 쫒기 위해 만들어 졌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아무도 모르게, 보이지 않게, 더 빨리 움직인다는 데 있었다. 숙련된 경찰관과 한 명의 붉은 여왕이 팀이 되어 범죄 현장에 투입되는데, 여왕은 특별한 두뇌를 가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렇게 기록상 가장 뛰어난 아이큐를 가진 안토니아가 선발 되었고, 11건의 사건에 참여해 10건을 해결했다. 하지만 3년 전, 업무 수행 중에 안토니아의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었고,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3년 전 사고 이후 100년도 넘어 보이는 아파트에서 세상과 등진 채 혼자 살고 있던 안토니아에게 함정에 빠져 정직을 당한 경찰 존이 찾아 온다.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존 입장에서는 안토니아를 설득해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을 해달라는 윗선의 제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감금된 상속녀 카를라와 범인의 시점, 그리고 사건을 추적하는 이들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이 시리즈의 재미는 비밀스러운 천재 요원과 저돌적인 경찰, 모든 면에서 서로 상극인 두 사람의 케미에서 온다. 한 번 읽은 것은 모두 기억하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와 힘세고 성질머리 더러운 경찰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수사를 위해 공조해나가는 과정이 속도감있게 펼쳐져 지루할 틈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스페인의 스릴러 작가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붉은 여왕>을 시작으로 <검은 늑대>, <화이트 킹>의 총 3부작으로 이 작품을 완성시켰다. 이 시리즈는 전 세계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100만 부 이상 팔렸으며,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로 제작이 확정되었다. 독특한 캐릭터 설정과 거침없는 속도감이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