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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의 언어 -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
주드 스튜어트 지음, 김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평점 :
정말 우습게도, 독극물 중 많은 것이 아주 좋은 냄새를 풍긴다. 문제는 그 냄새를 음미할 만큼 살아 있기 힘들다는 것이다. 청산가리는 희생자가 자신이 치명적인 독극물을 삼켰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드문 독극물 중 하나다. 살인을 다룬 여러 소설을 살펴 보면 희생자가 비터 아몬드 냄새를 느끼면서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른 독극물들은 나중에야, 그러니까 살육의 냄새를 한참 풍긴 후에야 자취를 드러낸다. p.104
어른이 된 뒤에 어린 시절로 다시 가본 사람이 있을까?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이 있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릴 때 다니던 학교에 가보면, 당시에 맡았던 바로 그 냄새가 다시 밀려든다. 그리고 그 냄새는 우리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이렇게 냄새는 기억의 빗장을 풀어 우리가 상상 속에서나 겨우 들어가볼 만한 장면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준다.
중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나는 바싹 마르고 케케묵은 종이 냄새, 두텁게 쌓인 먼지 냄새에 특별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주말마다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도서관에 가곤 했다. 시험 공부를 한다며 교과서와 문제집을 잔뜩 가방에 넣어 갔지만, 사실 내가 도서관에 갔던 이유는 책을 마음껏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일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공부는 잠깐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 저곳 열람실들을 누비며 다녔다. 특별한 한 시절의 꽤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종일 맡았던 오래된 책 냄새는 언제든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그야말로 냄새가 과거를 현재의 내 앞에 마법처럼 데려다 놓는 경험인 셈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마들렌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책 냄새를 맡고 있으면, 정말로 그 책이 지나온 지리적인 거리의 냄새까지 느껴진다. 누군가가 자신의 방을 가득 채운 책들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트럭에 싣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렇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주인의 마음에 따라 이동하는 동안 책은 나이를 먹어간다. 아주 오래된 책에서는 분해와 마술의 냄새가 걸러져 나온다. 냄새처럼 유령도 입자로 이루어진다. 주변 공기보다 약간 더 밀도가 높게 형성된 구름으로 공중에 떠 있다. 죽은 사람의 몸으로부터든, 살아 있으나 몸에서 이탈한 영혼이든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은 그렇게 제 몸을 만든다. p.353
이 책은 감각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온 저널리스트 주드 스튜어트가 신기하고 경이로운 냄새와 후각의 세계를 탐구하는 이야기이다. 마른 땅의 비 냄새, 금방 꺾은 잔디 냄새, 빨랫줄에 널어 말린 빨래 냄새, 겨울 공기 속 눈 냄새, 바닷물이 풍기는 청량하고 짭짤한 냄새, 금방 깎은 연필에서 나는 은근한 나무 냄새 등 51가지 냄새에 대해 들려준다. 그렇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각종 향들에 대해서, 무심코 지나쳐온 후각의 재발견하고, 우리의 몸은 냄새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감각하는 지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신경과학자, 화학자, 역사가, 심리학자는 물론 원예사, 조향사, 와인 제조가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인터뷰한 여러 학자들의 전문적인 답변과 최신 연구결과까지 담겨 있어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냄새들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의미까지 밝혀내고 있어 인문학적으로도 풍부한 내용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냄새에 대한 표현들이 너무도 생생하고 문학적이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빨랫줄에 널어 밖에서 말린 빨래가 풍기는 냄새는 마치 세상 모든 냄새의 축소판 같고, 마른 땅의 비 냄새는 초록색 풀 냄새와 싱그러운 물방울의 기운과 함께 세상의 공기를 안도감으로 채워주고, 금방 깎은 연필에는 모든 것을 감싸주는 듯한, 은근한 나무 냄새가 있고, 라벤더 향기는 처음에는 꽃잎처럼 하늘거리며 금방 사라질 듯 가냘프고 성급하지만, 강인함을 감추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이 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냄새가 어떻게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 기억 속 장면으로 들어가게 해주는지 궁금하다면, 공기 중을 떠도는 온갖 냄새 분자가 안내하는 새로운 세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