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있다. 그녀는 남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를 잃게 되리라는 걸 여자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잃어버린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사람은 한 번 잃으면 끝이다.' 어디서 읽었더라? 정말일까? 어쨌든 그녀는 남자가 퇴근해서 들어오거나 신문을 읽고 말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 '누워 있는 남자' 중에서, p.54~55

 

이 작품은 사강이 마흔 살의 나이로 발표했던 단편집이다. 1975년에 출간되었다가 2004년 사후에 재출간되었다. 결별을 테마로 한 열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강의 장편소설이 스무 편 정도 발표된 것에 비해 단편집은 네 권에 불과하고, 그중 한 권이 바로 이 작품 <길모퉁이 카페>이다.

 

제롬과 모니카 부부는 주말을 틈타 피레네산양 사냥에 나서는 길이었다. 함께 사냥을 할 제롬의 친구 스타니슬라스 브렘은 이혼 뒤 보름에 한 번씩 여자를 갈아 치우는 바람둥이였다. 그런데 사냥 여행을 하는 동안 결혼 생활 13년 동안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인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인 것처럼 보이는 정황을 목격하게 된다. 아내에게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고지식한 남자였던 제롬은 그런 행동이 촌스럽고 천박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해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자, 이들 네 사람의 주말 여행은 어떻게 될까?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인 <비단 같은 눈>이다.

 

 

마지막 계단을 돌아 내려오는데 갑자기 '삶'이 현관에 나타났다. 마르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바깥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마르크는 이미 환자들, 위로하는 친구들, 생각에 잠긴 의사들이 가득 찬 어두운 방 안에서 떨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태양은 이미 해바라기, 커다란 후회가 되었다. 바로 그때, 마르크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용기를 발휘했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인도로 뛰쳐나가 대로와 행인들, 도시를 바라보았다.        

                                                                                                        - '길모퉁이 카페' 중에서, p.200~201

 

<지골로>에서 오십이 넘은 여인은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낭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젊은 애인에게 작별을 고한다. <누워 있는 남자>에서는 봄날 오후에 자리에 누워 한없이 죽어가고 있는 남자가 등장한다. 불치병에 걸린 남자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한다.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 곁에서 죽음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 <어느 저녁>에서는 사랑하는 남자를 잊지 못하고, 다른 남자에게서 위로를 얻으려는 여자가 등장하고, <왼쪽 속눈썹>에서는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하러 가는 여자가 나온다.

 

사랑도 그렇고, 이별도 마찬가지로 뭔가 거창한 계기가 있다거나, 특별한 이유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돌발적으로, 혹은 무심코 일어나곤 한다. 만남도 헤어짐도, 행복도 상실도 말이다. 자유분방한 생활로 유명했던 사강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거쳤고, 그 사이에 수많은 연애를 해왔다. 거기에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까지 낳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한 경험들 덕분인지 이 책에 수록된 열아홉 가지 이별의 세계는 누구나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건조하고 시니컬한 문장으로, 가볍고 담백하게 펼쳐지지만 섬세한 감수성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것이 사강의 작품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나 이 작품에는 사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단편들도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사강이 속해 있었던 사교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대해 사강이 느끼는 씁쓸함이 녹아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생의 결정적 길모퉁이 접어든 영혼들에게 건네는 사강 식 위로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