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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이만하면 충분해. 이건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일이야. 나쁜 소설들에 나오는 보잘것없고 헤픈 여자를 향한 터무니없는 열정 말이야! 게다가 그 여자는 보잘것없고 헤픈 여자도 아니야. 그리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저 질투할 뿐이지. 그나마 이 마음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야. 이건 너무 과도한 일이야. 그게 아니라면 지나치게 하찮은 일이거나.'
그는 잠시 이곳을 떠나 있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심정으로 생각했다. p.57
출판사에 다니는 오십대의 알랭과 파니 부부는 매주 월요일마다 월요 살롱이라는 모임을 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홉 남녀는 모두 이 모임을 중심으로 친분을 쌓게 된 이들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이십대 여성 조제는 소설가 지망생인 베르나르와 한때 연인 관계였다. 지금은 연하의 의대생 자크와 사귀는 중이지만, 베르나르는 아직도 조제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금발의 착한 아내 니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내에게 애정이 없는 베르나르는 모임에 올 때도 항상 아내 없이 혼자 오곤 한다.
알랭 역시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아내 파니에게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무명의 배우 베아트리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베아트리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으며, 오로지 성공을 위해서만 남자들을 만날 뿐이다. 한편, 알랭의 친척인 젊은 청년 에두아르가 파리에 오게 되고, 베아트리스에게 한 눈에 반한다. 순수한 그의 마음은 즉각적인 열정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사랑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다. 힘 있는 연극 연출가 앙드레 졸리오가 베아트리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복잡한 애정선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p.186
이 작품은 사강의 세 번째 소설로 스물 두 살의 나이로 발표한 작품이다.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에 비해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여주인공이 이 작품을 좋아해 주인공 이름인 '조제'로 불리고 싶어 하는 걸로 나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조제'는 사강이 사 년 뒤에 발표한 희곡 <신기한 구름>에도 다시 등장한다. 설렘과 절망, 희망과 슬픔, 행복과 고뇌가 함께 공존하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강 특유의 자유로운 감성이 페이지 곳곳에 묻어 있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연령대도, 성격도, 상황도 모두 다른 아홉 남녀가 보여주는 각자의 감정들은 사랑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랑이라는 너무도 포괄적이고 주관적인 단어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설레임과 애틋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눈물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연민일 수도 있고, 동경일 수도, 그저 욕망의 발현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등장했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대한 대답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랑은 변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지금 이 순간은 상대가 없으면 못 견딜 것 같더라도, 언젠가는 그 지독한 사랑의 감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지금은 불타오르지만, 한 달 후에 혹은 일 년 후에 그 감정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강이 들려주는 사랑에의 열정과 덧없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유한함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