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전 무죄
다이몬 다케아키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2년 2월
평점 :
"경찰의 정의는 범인을 체포하는 것, 검찰의 정의는 재판에서 지지 않는 것, 내가 있던 법원의 정의는 법적 안정성. 딱 잘라 말해 전부 그 하나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변호인의 정의도 마찬가지야. 그런 건 통하지 않는데도 뻔하디 뻔한 변호를 해놓고, 부당한 판결이니 뭐니 부르짖을 뿐 현실에는 눈길을 주지 않지. 모두가 정의에 매몰되는 바람에 무고하고 약한 사람만 눈물을 흘려..... 힘든 싸움이 될 거야. 하지만 왜곡된 사법과 썩어빠진 정의에 새바람을 불어넣자고." p.91~92
변호사인 지사는 21년 벌어졌던 유괴사건의 범인 히라야마 사토시의 재심을 담당하게 된다. 당시 일곱 살 소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고, 차에 남아 있던 소녀의 머리카락이 증거가 되어 취조 단계에서 자백하고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히라야마는 초등학교에서 잡역부로 근무했었는데, 부근에서 있었던 소녀 실종 사건 중 한 건으로 경찰에게 의심받았고, 소아성애자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공판 때 진술을 번복했고, 장기 복역 중임에도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을 담당하게 된 변호사 지사는 당시 소녀 유괴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세 건의 유괴사건 중 한 아이는 죽어서 발견됐고, 한 아이는 실종 상태이며, 한 아이는 살아 돌아왔다. 지사가 바로 살아 돌아온 마지막 소녀였다.
지금은 유명 변호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사는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세상에 알려진 남자의 무고함을 밝혀낼 수 있을까. 유괴사건의 피해자가 어쩌면 자신을 납치했을지도 모르는 가해자를 변호한다는 파격적인 설정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사법 문제 중에서도 '원죄'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한 번이라도 경찰의 의심을 받으면 진범이 발견되지 않는 한, 그 사람은 계속 위험인물로 여겨진다. 그건 경찰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내면에는 강한 힘을 따르고 싶은 굳은 의식이 존재하므로, 강한 힘으로 한번 사회에서 배제된 인간이 복귀하기는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무죄판결을 받았으니까 그 사람은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보통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누명을 벗고 풀려난 '흉악한 살인범'과 단둘이 하룻밤을 보내라고 하면 분명 대다수는 겁을 먹을 것이다. p.175~176
모든 정황으로 미뤄볼 때 명백한 범인임에도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기소할 수 없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고, 수사팀에서 범인이라고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증만으로 처벌을 가할 수는 없는 게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생각한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한 인간에게 죄를 묻지 못해서야 어떻게 정의라고 할 수 있겠냐고. 그런 이유로 괴물이 풀려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명목으로 적법하지 않은 취조를 하고, 없는 증거를 만들어서 괴물을 가두어두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과연 정의인가. 악인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정의감, 적법하지 못한 취조라는 불의를 범하더라도 피해자를 위해 악인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정의감, 그것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또 없지 않을까. 게다가 만약 그렇게 종결된 사건이 원죄(冤罪,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로 밝혀진다면 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은 지켜져야 한다,와 죄를 저질렀다면 그 과정이 적법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는 사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법이 가려야 하는 것이 정의인지, 진실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변호인과 경찰 등 사건 관계자들이 각자 자신의 정의 구현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법정 소설로서도 매력적이지만, 무죄판결을 받은 범인이 진짜 범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에서 비롯되는 미스터리와 반전도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다이몬 다케아키는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사법 문제와 관련된 사회파 미스터리를 꽤 많이 써온 중견 작가이다. 묵직한 사법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