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 레이디 셜록 시리즈 1
셰리 토머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리드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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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샬럿은 특정한 순간에 마음속으로 주석을 달았다. 나머지 순간들은 별다른 주석 없이 소리와 움직이는 이미지들로 처리해 기억 속에 자리 잡도록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억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샬럿은 청소년기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인생이라는 서류철에서 유일하게 잊을 수 없는 요소는 감정이었다... 샬럿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였다.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어도 자신이 괴짜이며,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그렇듯이 이 점에서도 자신의 경험은 정상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p.252

 

까칠하고, 안하무인에, 인간미는 없고, 사회성도 없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인물이자, 100년 넘게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기네스북 선정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다루어진 캐릭터, 바로 셜록 홈스이다. 수많은 판본의 셜록 홈스를 읽어 왔고, 엄청나게 변주된 다양한 셜록 홈스를 보아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기대가 된다. 특히나 이번에 만난 작품은 '셜록 홈스'가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라는 대담한 발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모든 서사를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마법을 선사한다. 그러니 또 셜록 홈스냐고, 뻔할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셰리 토머스에게 사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잊지 말자.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것이라고는 사교계에서 남자들의 눈에 띄어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는 것뿐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불공평한 것들을 그저 참고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등식을 깨부수기 위해,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가문의 명예는 떨어지고, 그녀 자신은 추문에 휩싸여 당장 하루치 삶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하지만 '샬럿 홈스'는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셜록 홈스'라는 남성의 이름을 사용해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인 관찰력과 추리능력으로 런던 경찰청 범죄수사부의 자문을 하며 사람들에게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트레들스는 경찰 일을 하다 마주치는 이런 장면이 늘 거북했다. 살인 사건 수사는 마음 깊이 파묻어 둔 채 강박적으로 키워 온 원한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겪는 수많은 억울한 감정까지 들추어낸다. 사건을 수사하지 않았다면 당분간은 표면 아래에 잠들어 있었을 감정의 흐름. 사이좋게 잘 지내는 집이라는 이미지, 즉 주인은 신사적이고 배려할 줄 알고, 하인들은 주인에게 충실하고 서로에게 다정할 것이라는 생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순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믿지 않으면 어떤 집을 보아도 악다구니와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의심하는 냉소적인 부류가 될 것이다.    p.319

 

아무래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보니, 배경에 대한 묘사와 캐릭터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과정 모두를 느긋하게 즐긴다면 색다른 역사 미스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증거와 흔적도 놓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단서를 찾는 셜록 홈스만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들은 이 작품에서도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샬럿은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하숙집에서 쫓겨 나면서도 의자의 장식 덮개, 현관의 도어 매트에 남은 흙 발자국, 책상 위에 놓인 잉크 흡수지의 위치, 구석에 놓인 체스 게임판과 술병 등을 통해 집주인의 비밀을 밝혀 내고 당당하게 남은 하숙비를 떼이지 않고 돌려 받는다. 오갈 곳 없어진 그녀의 구세주가 되어 주는 왓슨 부인과의 첫만남에서도 옷차림과 화장품, 목소리와 몸짓을 단서로 숨겨진 정체를 파악해 내서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이야기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세 명의 죽음을 수사하는 런던 경찰청의 로버트 트레들스 경사의 시점과 그들의 죽음이 모두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런던을 혼란에 빠뜨린 홈스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는데, 그 속에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잉그램경과의 로맨스(?)도 함께 곁들여져 재미를 더해준다. 아직까지 로맨스 부분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너 매혹적인 스토리를 들려주지 않을까 싶다. '레이디 셜록 시리즈는' 현재 6권까지 출간되어 있다고 하니, 본격적인 셜록 홈스로서의 활약이 시작될 두 번째 이야기를 비롯해서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다들 홈스가 소설속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인 것처럼 말한다. 전 세계 경찰이 스승으로 추앙하고, 런던에는 정말 실존 인물이 살았던 것처럼 '221B 셜록 홈스, 자문 탐정, 1881~1904'라는 블루 플래크가 붙은 집이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기꺼이 셜록 홈스가 실존 인물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그가 100년도 넘는 시간을 거슬러 여전히 동시대에 숨쉬는 캐릭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완벽하게 새롭게 쓰여진' 셜록 홈스가 등장한다. 여성의 사회적 한계를 뛰어 넘고, 익숙한 설정을 뒤집는 새로운 시선으로 쓰여진 셜록 홈스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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