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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것들의 도시 ㅣ 일인칭 4
마시밀리아노 프레자토 지음, 신효정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월
평점 :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주 괴상한 도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비슷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마치 레고 블록처럼 꼭 맞게 조립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영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오히려 폐차장처럼 낡고, 오래되어 쓸모 없는 고철 덩어리들을 이어 붙인 듯한 집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들려온다. 녹슬고 흔들리는 발코니 근처 어디선가, 미지근한 바람만 조용히 조용한 도시를 가르며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는 뭘까.
가까이 가보니 한 까마귀가 창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벽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창문을 떼어 내려고 애쓰던 까마귀는 떼어낸 창문을 자신의 어깨에 올라탄 달팽이에게 먹이로 건네준다. 창문 하나 남지 않은 성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까마귀는 바로 이곳, 잊혀진 것들의 도시인 '샤'의 주인이었다.
이 도시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모든 것들이 모여 있었고, 까마귀는 쓸모 없는 것과 값진 것을 매일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었다. 책과 편지, 시계 등 중요하거나, 혹은 잡다한 물건들뿐만 아니라 '말'도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들 중 하나였다. 까마귀는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들을 병에 담아 두었다.
물건, 말, 눈물 등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잊혀져 이곳으로 오게 된 유령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와 두려움, 장난감들도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무심코 잊어 버리는 것들과 바쁘다는 핑계로 내버려두는 것들 또한 이곳 '샤'로 향할 것이다. 잊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샤에 도착하면, 온갖 기억으로 뒤덮인 사막에서 까마귀는 매일 아침 선별 작업을 한다.
인류가 창조하고, 사랑하고, 잊어버린 모든 것들이 신비로운 그림들과 독특한 상상력이 버무려저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이 우리의 삶을 거쳐 가고, 전부 간직할 수 없을 만큼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작품은 2021년에 단편 영화로 만들어 졌고, 이탈리아 다수 영화제 베스트 필름상 및 특별상을 수상했다. 책 역시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독특한 질감과 어두운 색감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우리가 잊고 사는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은 작품이지만, 어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당장 다음 페이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겠다는 긴장감이 몰입감을 안겨 주고,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그림들이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하고, 어둡지만 따스한 위로를 안겨주기도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 작품은 우리에게 잊혀진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작별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