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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간 예술가 : 예술 ㅣ 사람이란 무엇인가 7
이미혜.이재희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17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문학작품을 읽는 사람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민혁명의 결과 국가의 검열권이 느슨해지고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쇄물이 흔해지면서 18세기에는 독서층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독자층 증가는 신문의 번성을 통해 한눈에 알 수 있다. 검열권 완화는 다양한 신문을 발행하게 했다. 일간신문이 등장했으며 매일 수만 부의 신문이 팔렸다. 중산층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신문을 돌려 읽으며 시사와 경제에 대한 정보를 얻고 문학과 가십을 화제로 삼았다. 커피하우스에서 문학의 경향, 작가의 평판, 연극의 성패 등이 결정되었다. p.81
이다북스의 ‘사람이란 무엇인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생태, 교육, 노동, 형질인류학, 전쟁, 정치, 사회, 예술, 감염을 비롯해 각 분야에서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한다. ‘지구와 공생하는 사람’을 다룬 <생태>,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을 다룬 <교육>, 파괴와 혁신이라는 전쟁의 양면성과 이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봤던 <전쟁>, 사람다운 사람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 <종교>, 실제 활용되는 인공지능과 기술의 한계를 살펴본 <인공지능>, 인간과 동물이 소통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았던 <인간과 동물>편에 이어 이번에는 <예술>편이다.
이 책은 '시장으로 간 예술가'라는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다루며, 예술작품이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기 위해, 자연스레 예술의 발전 과정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예술작품은 그것을 원하고 즐기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고, 또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는 관계의 산물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수요자와 예술가가 어떤 사회적 맥락으로 연결되는지에 따라 예술의 형식, 주제, 내용, 성격 등이 모두 달라지는 것이다.
시장 제도는 음악가를 후원자로부터 독립하게 해주었고 명성과 부를 얻을 기회를 주었으며 더러는 천재 음악가로 존경받게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음악가의 과잉 공급과 그에 따른 실업의 위험이 내포되어 있었다. 음악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청중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다. 과거라면 궁정음악가로서 풍족하지는 않아도 안정되게 살아갔을 음악가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며 작품을 음악시장에 내다팔아야 했다. 슈베르트는 시장에서 실패한 예술가의 전형이다. 19세기 전반 작곡만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p.136
근대사회에서는 예술작품도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귀족이 주도한 예술 제도를 후원 제도, 근대 이후 중산층이 주도한 제도를 시장 제도라고 부른다. 전근대사회에서 예술가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이들의 후원을 기반으로 예술 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는 후원자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 그의 변덕에도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예술시장에서 주된 수요자가 중산층이 되면서, 시장 제도가 예술 생산의 기반이 된다. 예술가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작품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작업을 독립적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도 보편성에서 차별성으로 변모하게 되고, 개성과 독창성이 점차 중요해진다.
이러한 시장 제도를 기반으로 예술은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은 미술, 음악, 문학 등 주요 예술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사회적으로 살펴본다. 소설의 발전이 중산층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19세기에 이르러 소설의 확산이 절정에 달했고,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음악이 불특정다수의 중산층이 즐기는 것으로 바뀌면서 연주회라는 것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에 대해서, 그리고 예술의 상업화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술이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사실 또한 예술과 사회의 관계,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해주었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예술과 예술의 흐름을 읽고,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