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예감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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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주자가 훌륭했지만 밴드를 결성하고 이끄는 것은 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다. 음악의 발판을 다지고 상상력 넘치는 베이스 라인으로 끌어당겨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싱글거리며 너새니얼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아아, 음악의 세계에는 이렇게 굉장한 사람이 많구나. 이 사람도, 너새니얼도 같은 쪽에 있다. 머나먼 저편, 음악의 나라에. 두 사람의 옆얼굴이, 그 윤곽이 조명 속에서 빛나고 있다. 가고 싶다. 저 나라로.           - '하프와 팬플루트' 중에서, p.103

 

구상 12년, 취재 11년, 집필 기간 7년, 그리고 서점대상과 나오키상을 처음으로 동시에 수상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 <꿀벌과 천둥> 이후 4년 반 만에 찾아온 신작이다. 본편에서 다루지 못했던 주요 인물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 여섯 편을 담고 있는 소설집이다. 실제로 3년마다 열리고 있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배경으로 참가등록부터 1차 예선, 2차 예선, 3차 예선, 그리고 본선에 이르는 전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냈었던 <꿀벌과 천둥>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이번 <축제와 예감>은 선물처럼 느껴지는 작품일 것 같다.

 

마사루와 그의 스승 너새니얼의 이야기, 전설적인 음악가 호프만과 천재 소년 가자마 진의 첫 만남, 입상자 특전으로 콘서트 투어에 나선 아야와 마사루와 가자마 진, 그리고 콩쿠르 과제곡 <봄과 수라>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한 비화 등 짧은 분량임에도 더 없이 풍성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꿀벌과 천둥>은 그 자체로도 완벽하게 서사가 마무리되는 작품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한 캐릭터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였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그 여운이 오래 남았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이는 시간이었다.

 

 

 

성격적으로 비올라가 맞는다, 아마 내가 내는 비올라 소리는 이런 느낌, 비올라다운 비올라를 목표로, 은은한 소리로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괜찮은 연주를 한다. 그런 미래를 막연히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올라의 세계를, 이미지를, 가능성을, 획일적으로 한정 짓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비올라의 풍부함과 포용력을 얕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한, 도저히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 '은방울꽃과 계단; 중에서, p.135

 

<꿀벌과 천둥>에서 치열하게 경연이 이루어지던 2차 예선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정말이지, 이토록 부조리하고 잔혹한 이벤트가 또 있을까?' '이토록 잔혹하고,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벤트가 또 있을까?' 이 문장들만큼 이 작품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싶었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자신과의 싸움과 그것에 이르는 과정의 드라마는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줄리어드 음악원 출신의 엘리트, 16세 천재 소년, 한때 천재 소녀로 불렸지만 무대를 떠났던 인물도 있었고, 음악을 전공했지만 악기점에서 일하며 평범하게 살던 이도 있었다. 예술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가? 이들의 재능에 우열을 가릴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참가자들의 배경과 사연이 더욱 드라마틱한 경연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우열이 갈리는 순간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선택 받은 자, 승리한 자,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 기프트. 정점을 찍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을 보고 싶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눈물도 보고 싶어 한다. 엄청난 분량만큼이나 시선을 사로잡은 화려한 드라마였기에 긴장이 되는 순간도, 극중 설정에 몰입되어 땀이 나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 <축제와 예감>은 조금 느긋하게 즐겨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가 우리를 자연스레 4년 전 그때로 데려가 줄 테니 말이다. <꿀벌과 천둥>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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