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들
에마 스토넥스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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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에워싼 이 바다가 사람에게 헛것을 보게 만든다. 주임이 말해줬다... 사막의 신기루, 바다에서도 똑같은 신기루가 나타난다. 당신이 믿지 못할 온갖 색깔들. 물보라와 소용돌이, 수면 위에서 훨훨 날아다니다가 사라지는 형체들. 평평한 바다에서도 물은 잘게 쪼개지고 부서지며, 검은색을 띠는가 하면 밤새 바깥에 내놓은 쓰레기 봉지처럼 떨면서 다가온다. 당신은 하늘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만져볼 수 있을 것 같다... 날마다 바다와 함께 살다 보면, 바다는 당신 안에 무엇이 있든 그것을 꺼내어 비춰준다.       p.205

 

바다 한가운데의 등대에 남자 셋뿐이다. 거기에 특별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냥 세 명의 남자와 바다가 전부다. 사방 수 킬로미터 내에는 바다, 바다, 그저 바다밖에 없다. 외로움, 고립감, 단조로움이 함께 하는 그 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바로 등대원의 삶이었다. 네 명의 남자가 교대로 세 명씩 8주간 등대에서 일을 하고, 4주간 집으로 가서 휴가를 보내는 교대 근무를 반복해 왔다. 그 날은 지긋지긋한 폭풍우 때문에 며칠이나 배를 띄우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날씨가 풀려 교대할 등대원을 데리고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는 타워 등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있어야 할 등대원 세 명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빠져나간 징후도, 도주한 흔적도 없고, 등대원들이 어디론가 떠났음을 암시할 만한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두 개의 벽시계는 같은 시각에 멈춰 있었으며, 식탁에는 식사를 앞둔 듯 식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임 등대원의 기상 일지에는 폭풍이 타워를 맴돌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하늘은 맑았다. 이곳에 있던 세 남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떤 기이한 운명이 이 불운한 세 남자에게 닥쳤던 것일까.

 

 

 

가보지 않은 길이 수없이 많아요. 만약에 내가 아서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약에 패딩턴 역의 매표소 줄에 서 있던 나에게 그이가 인사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이가 등대 관리소에 취직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우리가 휴가를 가지 않았다면, 또는 그 여름 별장이 지어지지 않았다면, 또는 그 남자가 월요일에 출근하기로 결심해서 돈을 더 많이 벌고, 그래서 여기가 아닌 외국에, 투산의 언덕배기에 작고 예쁜 집을 지었다면? 만약 내가 그날 목욕을 하지 않았다면?         p.382

 

1900년 스코틀랜드 앞바다에 있는 엘런모어 섬에서 등대지기 세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등대원들이 사라진 미스터리와 감춰진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타워 등대에서의 삶에 대한 일화와 경험 가운데 일부는 실제 등대원들의 회상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이다. 1972년에 등대원 세 명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20년 뒤인 1992년에 해양 미스터리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러 나선 모험소설가가 등대원의 아내들과 연인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교차 구성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각각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어, 전체 사건의 퍼즐을 맞춰 가는 과정 내내 긴장감 넘치는 몰입감을 안겨 준다.

 

대부분의 범죄 소설에서 피해자의 가족, 친구, 주변인물들을 지배하는 것은 '회한'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시간이 그대로 박제되어 머릿속에서 '만약'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때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이라는 선택에 대한 후회,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시간의 끝을 잡고 돌아가고 싶은 회한의 선택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한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결국 내가 하는 선택은 같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에서 하는 수많은 결정들로 인해, 결국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 그러니 모든 이야기에는 한 가지 이상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세 남자가 고립된 등대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털어 놓는 진실과 거짓말이 안겨주는 충격이 파도처럼 읽는 이를 뒤덮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파도가 솟구치고, 바닷물이 뱃머리를 들이받고 부서져 내리는 장면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 속에 엷은 안개와 함께 위엄 있게 서 있는 고독한 등대 속에서 벌어진 미스터리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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