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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숨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6
유즈키 유코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평점 :
후미에는 거울 속 자신을 봤다. 턱이 두 겹인 뚱뚱한 여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귓속에서 가나코 목소리가 들렸다.
- 동경하던 무타 씨가 다시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다시, 아름다워, 진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p.168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후미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 있다. 사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맞벌이를 반대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며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사실 육아는 머리로 이해한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과식증으로 인해 체중이 많이 늘었고, 해리성 이인증으로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것 외에 점차 밖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재회한 동창 가나코에게 특별한 제안을 제안받고, 다시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해 예전의 미모를 되찾고, 남편 몰래 일을 시작하며 고소득을 얻게 되면서 명품 쇼핑과 값비싼 음식에 익숙해져 가는데, 과연 이 행복이 계속될 수 있을까.
하타와 나쓰키는 화려한 서양식 3층짜리 별장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남자의 사건을 수사 중이다. 현장 상황을 감안해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았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정보를 통해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수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사의 끝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은 바로 다카무라 후미에였다. 후미에는 자신을 찾아온 경찰들을 보며 대체 그 살인사건이 자신과 무슨 관계인지 당황스럽다. 왜 그녀는 살인 용의자가 된 것일까. 해외에 있는 가나코와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조차 모르는 남편에게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었던 후미에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위로하는 다정한 말에 가슴이 아파 왔다. 후미에는 다시 사과하고 전화를 끊었다. 침대에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도시유키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 그럼 내일은 돌아오겠네.
왜 나는 지금 이런 데 있을까. 왜 경찰 조사 같은 걸 받아야 하나. 올려다본 천장이 흐려졌다.
- 돌아가고 싶어. 가나코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p.343
여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제대로 그려내었던 <고독한 늑대의 피>, 묵직한 승부의 세계와 강렬한 아날로그 수사극을 보여주었던 <반상의 해바라기>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유즈키 유코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은 유즈키 유코가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범죄 미스터리이다. 여전히 탄탄한 구성과 정교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달콤한 유혹에 빠져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유즈키 유코는 화려함과 외면만을 좇는 뒤틀린 욕망, 완벽하게 계획된 지독한 사기극이라는 소재를 자극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육아와 다이어트, 뷰티, 외모에 대한 집착 등 여성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여성들의 서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분노하게 만들면서 누구도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특정 개인에서 비롯된 탐욕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의 시점으로 읽히는 이야기라 묵직한 여운이 남게 되는 것 같다. 외모가 절대 가치가 된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 안타까운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