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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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부패하고 남은 뼈는 그 사람이 한때나마 이 세상을 살았다는 증거다. 뼈는 살아 있을 때와 세상을 떠난 뒤에 겪은 일을 모두 담고 있다. 뼈는 살아 있을 때와 세상을 떠난 뒤에 겪은 일을 모두 담고 있다. 뼈는 망자의 세계와 이 세계를 잇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많은 연구 분야 중에서 병리학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다.... 우리는 뼈를 생체역학이나 생물학적 측면에서만 이해하려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온 뼈들이 어떻게 세상 사람과 교집합을 갖는지 이해하려는 것이다.     p.48~49

 

법의학을 다루고 있는 책들은 꽤 찾아서 읽어본 편인데, 법의인류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법의인류학이란 고고학, 인류학, 법의학 등 다양한 지식을 응용해서 뼈를 분석한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를 분석해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의 종류와 원인을 관찰해낸다. 이 책의 제목인 ‘뼈의 방’은 기증받은 유골을 모아둔 법의인류학자의 특별한 공간을 말한다. 연구자들은 뼈의 방에 있는 유골들을 통해 망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려진 진실을 읽어낸다.

 

 

1920년대 케이프타운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 스코틀랜드 북부의 서덜랜드 농장에서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총 아홉 사람의 유골을 손에 넣었다. 이들은 붙잡혀 끌려온 뒤 강제 계약을 맺고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2017년 무렵, 해당 대학교에서 시신 관리를 책임지고 있던 박사가 과거에 비합법적으로 얻었던 유골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유골을 과학적으로 검증해서 후손에게 돌려주려는 목적으로 2년에 걸쳐 공공 반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법의고고학과 고고학으로 찾아낸 유골 주변 환경의 증거와 오래된 뼈에서 DNA를 추출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이들은 한 인간으로서 유골이 가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살아 잇는 사람은 제아무리 많은 죽음과 마주한다 해도 죽은 이들과 교집합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해부학에 발을 담그고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면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평행우주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이 다리를 건너본 사람은 해부학이 준 특별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첫걸음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해부학의 모든 것이 몸 안의 신경 하나하나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p.174

 

신진 법의인류학자로 주목받는 저자는 이 책에서 뼈를 통해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고인이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뼈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한때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은 단순히 육신의 작동이 멈추는 일이 아니'라는 점과 '죽음에 대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체와 뼈에 남은 상흔 및 그 분포를 분석해 '죽은 사람이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았는지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뒤에 다른 이야기를 꾸며내 진상을 숨긴 것은 아닌지' 추측해볼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뼈를 통해 과학적, 문화적으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어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치열한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어렵지 않게 법의인류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에 대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본즈>, <CSI:과학수사대> 등을 즐겨본다면, 이 책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법의인류학자들은 억울하게 잊히는 죽음이 없도록 지금도 사건 현장에서 묵묵히 진상을 밝혀나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 속 미제 사건, 세계적으로 논란거리가 된 사건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잃어버리고 쓸쓸히 잊힌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려준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치열한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모든 유골에는 저마다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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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7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21-07-27 14:28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있어요. 빌려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