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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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리는 '청인' 중심 사회에서 '들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요된 불편함은 비단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생명에 관해서만큼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재해시 송출되는 긴급방송이나 사고시 교통기관의 안내 방송도 그들에게는 가 닿지 않는다. '그 지진' 당시 많은 장애인의 피난이 늦어지고 지원을 못 받는 현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 그중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p.41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가 어느새 세 번째 이야기로 찾아 왔다. 이 시리즈는 2017년에 출간되었던 <데프 보이스>에 이어 2019년에 나왔던 <용의 귀를 너에게>,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로 이어진다. 사실 오래 전에 <데프 보이스>라는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청인, 농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청각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말 대신에 사용되는 단어였지만, 일상에서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는 표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농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청인도 있고, 부모 모두 청인임에도 아이가 선천적인 농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아라이 나오토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청인, 즉 코다(CODA)이다. 그는 경찰서 사무직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다 그만두고, 수화 통역사로 일을 시작해 법정 통역을 하며 농인의 세계를 둘러싼 편견과 차별에 맞서게 된다. <데프 보이스>에서는 한 농아시설에서 17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살인사건에 얽힌 전말을 밝히는 이야기가 펼쳐졌고, <용의 귀를 너에게>에서는 그로부터 2년 뒤 여전히 법정 통역 일을 하고 있는 아라이가 여러 사건을 마주하며 농인들의 세상 속 수화 통역사로서 한층 더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힘 있는 시선이 아라이를 향하고 있었다.
<제 말을,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재판관에게 전해 주세요.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라이는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그녀는 누구의 설득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이번 '싸움'을 결심하였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약자를 위한 지원'이 아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바라고 있다.    p.245

 

이번 작품에서는 아라이가 수화 통역사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어른스러워진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와 연인 미유키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으니 말이다. 사실 그는 아이 낳기를 망설였는데, 태어날 아이가 '들리지 않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 건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났고, 생후 한 달이 되어 받은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에서 청각 장애가 있다는 판명을 받는다. 아라이와 미유키는 딸의 양육 방식을 두고 깊게 고민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이야기들에 비해서 아라이 집안의 6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과 아라이와 미유키가 점점 더 부모가 되어가는 모습이 뭉클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만의 특별한 점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저쪽'과 '이쪽' 두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라는 점일 것이다. <데프 보이스>에서 등장할 때만 해도 아라이는 농인 사회와 청인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작품을 거쳐 오면서 이제는 데프 커뮤니티 안에 완전히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들리지 않는 아이'의 90퍼센트는 '들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가족이 모두 '들리는' 가운데, 혼자만 '들리지 않는' 아이로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족과 함께 있어도 늘 외톨이라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들리는' 아이였던 아라이의 지독한 외로움은 가정을 꾸리고,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수화 의료 통역의 문제점, 청각장애인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고용 차별 민사소송 등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는 에피소드들도 너무도 현실적이라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농인들의 음성이 되지 않는 외침'에도 조금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지기를, 소수자가 놓여 있는 불공정한 현실이 조금씩 달라지기를,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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