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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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다르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내 목소리다.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착각이다.    p.311

 

박노해 시인은 2014년에 시작해 7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박노해의 걷는 독서>를 연재 중이다. 이 책은 그렇게 연재한 2,400편의 글 가운데 423편의 글을 엄선해 묶었다. 그리고 각각의 페이지에는 글에 맞는 컬러사진을 수록해 글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전체 페이지가 880페이지나 되어 마치 사전처럼 느껴지는 두께감의 책이지만,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듯한 판형이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각각의 페이지에 하나의 글과 사진만 수록했기 때문에, 매일 아무 페이지나 들춰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책에 수록된 사진 크기가 너무 작아서 제대로 그 정취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수록된 사진들이 궁금했다면, 서촌 '라 카페 갤러리'에서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展이 진행되고 있으니 가보면 좋을 것 같다. '박노해의 걷는 독서' 2,400편 중 엄선한 57점의 작품이 특별 전시되고 있으며, 전시관람은 무료이다.

 

 

 

오늘은 오늘로 충분한 것.
오늘의 실망도 미움도 괴로움도 그만 접자.
새도 지친 날개를 접는다.
접어야 다시 내일의 창공을 날 수 있으니.     p.759

 

이 책에는 내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 내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다, 일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일하게 하라, 살아있는 모든 이는 죽은 자를 딛고 서 있다, 기를 쓰지 말고 마음을 써라, 나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할 때는 어떻게 살지 말 것인가를 생각하라.. 등등 단 한 줄로도 충분한 글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에세이이자 편지이자, 고백록이자 명언집처럼 읽히기도 한다. 짧은 한 줄의 문장들은 영어로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페이지가 구성되어 있다. 한국문학 번역의 독보적인 대가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가 박노해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하여 우리말의 깊은 뜻과 운율까지 살린 영문을 나란히 수록하였다.

 

시인은 서문에서 '우린 지금 너무 많이 읽고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잠시도 내면의 느낌에 머물지 못하고 깊은 침묵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진의 크기를 줄이고, 짧은 문장들만 수록해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매 페이지마다 여백의 미가 충분히 느껴지는 책이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나의 책읽기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시인의 말처럼 너무 많은 책들을, 한꺼번에 많이 내 속에 담으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바쁘게 앞만 보면서 달려가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정보들을 쏟아 붓다 보니, 읽었던 책들도 기억이 잘 나지 않거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지식들이 결국 희미해져 버리기도 한다. 천천히 풍경을 즐기면서 걸을 때처럼, 그렇게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이런 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가득하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한 책을 찾는다면,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를 만나 보자.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필사하기에도 좋고, 짧은 시간에 잠깐 읽기에도 좋다. 위로와 희망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예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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