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계단 스토리콜렉터 93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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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누군지 알아요. 금발이 아니라 검은 머리, 파란 눈이 아니라 검은 눈이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군요."
"난 아무도 아니에요."
세라는 그녀가 한때 촉망받는 FBI 요원이었지만 이제 FBI 수배 명단 꼭대기에 올라가 있고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1면 제목을 가리켰다. "뉴스에는 진실이 없군요, 그렇죠? 당신에 대해서도, 다른 모든 것들도. 우리는 거짓말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어요."
"항상 진실은 있어요, 세라. 기만의 바다 아래 기다리고 있을 뿐."    p.47

 

딘 쿤츠의 '제인 호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 FBI 요원 제인 호크는 해병 대령인 닉과 결혼 6년차 부부였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메시지만 남긴 채 남편이 갑작스럽게 자살을 감행했고, 제인은 미심쩍은 죽음의 진실을 직접 밝히기로 한다. FBI 휴직 후 자살 위험군의 일반적인 특징에 전혀 들어맞지 않은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자살한 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울증 병력이 없고 감정이나 경제 문제도 전혀 없는, 성공하고 사회에 잘 적응한 사람들의 자살 사례가 최근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배후에 나노테크놀로지로 세상을 통제하려 하는 엘리트 소시오패스 집단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들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인다는 믿기 힘든 생각으로, 컴퓨터가 도출해 낸 위험인물을 매년 8천4백명 제거하면 모두가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비뚤어진 정치적 신념에 맞춰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그들 권력 집단에 맞서 스물 일곱의 여성 홀로 고군분투하는 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메인 플롯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사방에 있고, 드론, GPS로 위치를 발신하는 차량도 있으며, 각종 권력층의 손길이 어디든 손을 뻗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 혼자 뭘 할 수 있을까. 제인은 현재 미국 내 모든 수사기관의 긴급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 있고, 언론에 얼굴도 보도된 상태라 늘 모습은 완전히 바꾸고 다녀야 했다. 그녀가 이 일에 목숨을 건 이유는 단순히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다. 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의 다섯 살짜리 아들 트래비스까지 살해 협박을 받은 상태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두고 홀로 움직여야 했다. 최고의 여성 FBI 요원에서 일급 수배자가 된 제인은 과연 인류의 뇌를 통제하려는 소시오패스 집단에 맞서 아들을 지켜내고, 남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빈은 견고하고 영원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사실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나무 그루터기에서 일어서면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물 빠진 청바지 색 같은 사막의 하늘, 깃털처럼 잎을 드리운 여왕야자나무, 곧 저 멀리 산맥까지 꽃이 피어날 광대하고 평평한 사막. 그 모든 것은 일상적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놀랍고 값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며, 세상 모든 공간은 실체가 주어진 환상적인 꿈이다. 그 꿈에서 깨어나서 죽음 속에서, 나노 임플란트 노예의 생활 속에서 눈을 뜨게 될 수도 있다니.      p.410

 

이 시리즈를 환상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제인 호크라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이다. '화장도 하지 않고 립스틱조차 바르지 않았지만 화장이 필요 없어 보이는 얼굴'이라고 설명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뛰어난 액션, 영리한 두뇌와 직관, 그리고 어떤 일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베짱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덕분에 사상 최악의 악당보다 언제나 두뇌 회전이 빨라 한 발 앞서갈 수 있었지만, 너무도 대규모의 조직과 홀로 맞서 싸워야 했기에 매 장면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서스펜스를 만들어 낸다. 특히나 '자유의지와 불굴의 용기만 있으면 자연법칙 안에서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시켜주는데, 문제는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적들이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수수께끼 같은 어둠'과도 같다는 점이다. 이번 작품에서 드디어 베일에 감싸 있던 압도적인 빌런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아들의 신변마저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마주하게 될 끔찍한 진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사실 <사일런트 코너>를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제인 호크의 여정이 매 작품마다 새로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리즈물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독특하게도 이 무시무시한 집단과의 대결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새로운 에피소드가 추가되고, 제인 호크가 마주하게 되는 인물들도 계속 달라지지만, '나노테크놀로지로 인류의 뇌를 통제하려는 권력 집단의 실체는 여전히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매 작품마다 오백 여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라 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악당의 뒤를 캐도 캐도 계속 뭔가 더 나오고 있으니, 자연스레 플롯은 복잡해지고, 베일에 싸여 있는 거대한 음모의 배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확장되는 것이다. 딘 쿤츠가 그려내는 세계는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더욱 정교하고 탄탄하게 구축되고 있어, 매번 다음 작품이 전작보다 더한 재미를 안겨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인 이번 작품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아마도 다음 작품은 그 재미가 더욱 증폭될테니 더욱 기다려진다. 현재까지 제인 호크 시리즈는 <사일런트 코너>, <위스퍼링 룸>, <구부러진 계단>에 이어 <The Forbidden Door>, <The Night Window>까지 다섯 편이 출간되어 있다. 네 번째 작품도 국내에서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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