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의 이야기
디노 부차티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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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님." 이제 피에트로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사실대로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왜 다 거짓말하셨어요?"
"거짓말이라니?" 플라네타는 평상시의 유쾌한 말투를 가까스로 유지하면서 반박했다.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그냥 네가 믿게 뒀을 뿐이야. 네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어. 말하자면 그게 다야."     - '대수송단 습격' 중에서, p.25

 

군인이 된 아들이 무려 2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한없는 기다림 끝에, 희망이 사그라지기 시작했을 즈음에 도착한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눈물범벅이 된다. 아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지치고 고단해 보였다. 망토를 벗고 편하게 들어와 앉으라는 엄마에게 아들이 무의식적인 방어 동작을 취한다. 금방 나가야 해서 안 벗는 게 낫겠다고. 게다가 아들은 누군가와 함께 왔다고, 밖에 그 사람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다. 아들은 말르 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딘지 슬퍼 보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고, 앞으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텐데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잠시 후, 엄마는 아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파란색 모직 천의 망토의 사연과 아들의 슬픔, 그리고 길에서 기다리던 의문의 인물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슴속에 수세기가 거듭되어도 절대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멍이 뚫려 버린다.

 

단 7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이 매우 강렬한 작품이었다. 작가가 종군기자였고, 여러 소설과 시, 오페라와 희곡을 썼으며, 화가 및 만화가이자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 안에 온갖 희노애락과 서사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특파원으로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방문하기도 했고, 범죄 기사 및 사망사고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미스터리를 주제로 한 초자연적 현상, 환시와 계시, 심령술에 관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 방면에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과 수많은 지식들이 다수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을 저널리즘적 글쓰기로 풀어내어 설득력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쓰인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 묻는 건 부질없다고 조반니는 생각했다. 여태껏 그랬듯이 모두가 다른 답을 줄 것이고, 다른 장소로 안내할 것이며, 신문 기사는 한 줄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모두에게 각자의 산사태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산비탈의 흙이 밭으로 무너진 일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름더미가 무너진 일이요, 또다른 누군가에겐 돌담이 붕괴된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불행한 산사태를 품고 있지만, 조반니가 찾아 헤맨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지면 세 단을 채우고, 어쩌면 그에게 행운을 안겨줄 대규모 산사태를 보려 했다.)     - '산사태' 중에서, p.367

 

이 책은 이탈리아 환상문학의 거장 디노 부차티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60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디노 부차티는 국내에 최근에 소개된 작가인데, 올해 2월에 출간된 장편 소설 <타타르인의 사막>이 처음이었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60개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등 여러 장르적 특색을 선보이며 단편작가로 유명했던 그의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1958년 출간 당시 보기 드물게 장편이 아닌 이 단편집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명망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스트레가상’이 수여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독창적인 상상력과 완성도 높은 문학성으로 부차티 단편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60편의 이야기들은 각각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여운을 남겨준다. 게다가 전쟁이 야기한 인간세상의 희비극과 질병 및 전염병, 군중의 광기와 집단심리 등 너무도 다양한 소재로 쓰여진 이야기들이라 지루할 틈 없이 읽는 재미도 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60개의 이야기들을 통해 불가해한 수수께끼와 모험이 가득한 부차티 단편의 정수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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