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들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부당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벌어들인 돈을 가져다가 그 부당한 시스템 때문에 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겁니다. 당신들은 공평한 운동장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리해지도록 45도쯤 기울여놓았어요. 그러니 운동장이 불공평해지고 게임이 지루해진 겁니다, 데이브." 루이는 지미에게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나와 다시 비치볼 모양으로 쪼그라들어서 통통 튀기 시작했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사람이 재미없고 둔해집니다." 그가 3미터 높이로 튀어 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지며 말한다. "당신들 미국인들은 대부분 재미없고 둔한 사람들이에요."      p.141

 

빌리 모턴은 작은 어선을 갖고 있는 선장이었다. 어느 날, 선원 두 명과 함께 그물을 펼쳐 놓고 기다리는 중에 이상한 물고기가 선실 지붕위로 올라온다. 못생긴 복어 같은데, 덩치가 농구공만큼 큰, 털복숭이 농구공 혹은 비치볼 같은 물고기였다. 빌리는 지느러미도 비늘도 눈도 없는, 물고기처럼 생긴 구석은 하나도 없는 털복숭이 물고기를 집으로 데려 간다. 아이들은 그것을 '웃기는 물고기'라고 부르며 함께 놀고, 그것은 아이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책을 읽는다. 그것은 보기와 달리 아주 똑똑한 존재였고, 외계 생물처럼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CIA와 은행을 해킹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 인간처럼 말하기 시작한다. 다른 우주에서 왔다고 말하는 그것에게 빌리는 묻는다. 여기 지구에 왜 온 거냐고.

 

"목적은 전혀 없어, 빌리. 우리는 놀러 왔어."

 

은행과 기업의 계좌 수백 개를 해킹했지만, 특별한 목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 그냥 재미로, 놀이를 한 것에 불과했다. 그들이 컴퓨터를 해킹해서 통제하는 능력을 모조리 사용한다면, 몇 주 만에 인간의 문명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즐겁게 놀려는 거지 파괴적인 혼돈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혁명에는 관심이 없다. 지구에 온 외계의 존재들은 수백 명이나 되었고, 그들은 국토안보부와 NSA 등 미국 정부로 대표되는 시스템들을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재미있어 한다. 물론, 미국 정부는 그런 일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벌이는 외계인들과 그들을 소탕하려는 정보요원의 추적극이 한바탕 소동처럼 펼쳐진다.  인간보다 훨씬 지능이 높은 외계 생명체들은 테러리스트 명단을 삭제하고, 기업가와 정치인을 겁박하고, 문학작품을 쓰거나 스포츠 스타가 되기도 한다. 미국 정부와 언론은 그들을 지구에서 추방하고자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데, 과연 이 난장판의 끝을 볼 수 있을까.

 

 

 

"대단하군." 내가 말한다. "내가 진짜 중요한 사람 같아."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인간 질병의 핵심이야." 루이가 말한다. "인간들이 개인으로서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놓을 수만 있다면, 그 병이 나을걸. 주위 사람들은 물론 모든 생명체들과도 하나가 되어 살아가게 될 거야.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다른 생물들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 그런데 지난 3,4천 년 동안 당신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라는 생각, 유일하게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 때문에 지구에 무슨 재앙이 벌어졌는지." 횡설수설이 말한다.      p.445

 

'주사위의 결정'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인 콘셉트를 바탕으로, 경계도 한계도 없는 강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다이스맨>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루크 라인하트의 신작이다. 권태에 지쳐가는 정신과의사가 어느 날 주사위를 던진 뒤, 주사위 눈이 내려준 결정이 강간, 살인 같은 끔찍한 일일지라도 무조건 따르기로 한다는 파격적인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 작품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이상하지만 색다르고, 진지하면서도 경쾌하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루크 라인하트는 파격적인 데뷔작 <다이스맨> 이후로 45년이나 지나서 이 작품 <침략자들>을 출간했다. <다이스맨>이 ‘20세기 최고의 컬트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침략자들>은 '가장 독창적이고 유쾌한 SF'라는 수식어로 설명이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지구를 찾은 '털복숭이 비치볼' 외계인들과 인간과의 조우를 통해 인간들의 부조리와 21세기 미국과 미국인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 무거운 주제들을 가볍고 유쾌하고, 그럼에도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파격적인 작품인 만큼, 표지 역시 색다른데 띠지를 걷어내면 보여지는 앞표지에는 제목도, 저자 이름도, 출판사 명도 표기되어 있지 않다. 마치 컴퓨터 오류 화면 같기도 하고, 암호처럼 느껴지기도 한 이미지가 전부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원서 표지가 외계의 존재들을 드러냈던 것에 비해, 한국판 표지가 더 파격적이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조금은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는,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사회고발 SF를 만나 보자. 작가의 이웃들은 그를 괴짜 노인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정말 루크 라인하트만이 그려낼 수 있는 괴짜 SF 소설이다. 싸움보다는 장난을 좋아하는 이상한 외계인들의 대혼란 파티에 당신을 초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