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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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나무에게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키가 큰 나무의 어두운 그늘에서 평생 살아온 하층부 나무들이라면 날씨보다는 빛을 가리는 제 이웃을 두고 투덜댈 것이다. 들판에 자라는 나무들에게는 잎을 피워 내는 족족 먹어 치우는 염소나 사슴이 불만의 대상이다. 지중해 숲의 나무는 이 지역의 유난히 우울한 봄보다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삶을 괴롭게 만드는 산불 때문에 불평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무들은 사람들 못지않게 날씨 이야기를 좋아한다. 미국 남서부 지방의 나무들은 가뭄이 오면 툴툴대면서 폭이 좁은 나이테로 불만을 표시한다.     p.53

 

이 책은 연륜연대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과학 교양서이자 한 여성 나이테 과학자의 경이로운 탐구 일지이기도 하다. '연륜연대학'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과거에 있던 기후변화와 자연환경을 밝혀내는 학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연륜'이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이 축적되어 보여지는 모습을 지칭한다고만 아고 있었다면, '연륜'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뜻은 바로 '나무의 줄기나 가지 따위를 가로로 자른 면에 나타나는 둥근 테'를 말하는 것으로 '나이테'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나무 그루터기에서 나이테를 세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연륜연대학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과학'이라는 점에서 친근하다. 손으로 나무를 쓰다듬고 맨눈으로 나이테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정체 모를 나노 입자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는 은하도 없는 과학이라는 점과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과학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발레리 트루에는 연륜기후학자로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20년 동안의 과정을 바탕으로 '초라하게 시작된 연륜연대학이 숲과 인간과 기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연구하는 핵심 도구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나무를 조사해 목재가 얼마나 자랐고, 또 얼마나 탄소를 저장하며, 목재 생장이 물의 가용성, 기후 변이, 숲의 교란 등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 수 있다면 어떨까? 연륜연대학자들은 이 탄소 퍼즐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우리는 나이테 측정기를 가지고 서로 다른 수종, 수령, 토양, 기후의 나무에서 얼마나 많은 목질부가 자라고 얼마나 많은 탄소가 저장되었는지 조사할 수 있다. 우리는 길어진 생장기가 어떻게 목질부 생장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나이테는 우리에게 기후 변화가 어떻게 과거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 가르쳐 주었다.     p.300

 

어릴 때 읽었던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작품을 얼마 전에 아이에게 읽어 주느라 다시 읽었다. 나무는 사랑하는 소년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하다, 더 이상 줄 게 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뒤 자신의 나무 밑동울 내어 주며 쉴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동적인, 뭉클해지는 이야기였다. 실제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나무는 인간과 늘 공존해왔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왔다. 인류 문화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무와 숲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나무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넘어서 과학적인 방식으로 나무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나이테를 세면서 과학, 역사, 지리, 기후, 건축,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를 넘나드는 저자의 이야기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 나이테와 태양의 흑점과 해적선처럼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존재들의 상관관계도 알 수 있고,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의 흥망성쇠에 기후가 미친 영향도 살펴볼 수 있었다. 나무는 1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는 무려 5026살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과거의 날씨와 역사를 기록하는 나이테 덕분에 언제 날이 따뜻했고, 비가 많이 내렸는지, 언제 가뭄이 들고 산불이 났는지 알 수 있다. 나무를 통해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나무에게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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