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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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별로 하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책이 출판되면 홍보를 위해 티셔츠나 토트백이나 모자 같은 굿즈를 만드는 일이 꽤 있다. 각 출판사에서 "이런 것을 만들었습니다"하고 보내준 굿즈가 상당히 많다. 한 상자 가득 되지 않을까. 그런 뭐 좋은데 그렇게 받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다닐 수 있는가 하면 당연히 그런 짓은 못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Haruki Murakami'라고 대문짝만 하게 쓴 티셔츠를 입고 백주 대낫에 도쿄의 대로를 걸어 다닐 수는 없잖아요?      p.38~41

 

딱히 물건을 모으는 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물건들이 '모이는' 인생이 되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다 듣지 못할 양의 LP 레코드, 아마도 다시 읽을 일 없을 책, 잡지 스크랩, 짧아진 몽당연필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인' 티셔츠들.. 값싸고 재미있어서 사고, 여기저기에서 홍보용으로 받고, 마라톤 완주 기념으로 받고, 여행 가면 그 지역 티셔츠를 사다 보니 어느새 잔뜩 늘어나서 상자에 담아서 쌓아 놓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는 이렇게 모인 티셔츠 얘기로 책까지 내게 되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낡은 티셔츠를 펼쳐놓은 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관해 쓴 짧은 글을 모은 것이다. 현지에서는 시티보이 잡지를 표방하는 《뽀빠이》에 일 년 반 동안 연재되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백여 장의 티셔츠 사진, 권말에 특별 수록된 ‘티셔츠 인터뷰’는 보너스로 소설만큼이나 에세이도 빛나는 하루키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티셔츠 하면 여름, 여름 하면 맥주..... 잖습니까. 아니, 뭐 굳이 여름이 아니어도 난로 앞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 위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가운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도 인생에서 큰 행복 중 하나죠. 네? 난로도 없고 흔들의자도 없고 고양이도 없다고요? 그거 안됐군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도 그런 건 하나도 없다. 고양이조차 없다. 다만 그런 상황은 분명히 멋질 거라고 상상해보았을 뿐이다. 상상력이란 중요하니까.      p.151~152

 

서핑, 햄버거, 위스키, 레코드, 동물, 맥주, 도마뱀과 거북이, 독서, 슈퍼히어로, 곰... 등 하루키는 각각의 티셔츠들을 이러한 주제들로 선별했다. 그 중에는 디자인이 좋아서 자주 입는 것도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자주 입지 않는 것들도 있다. 미국 독자가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준 멋진 디자인의 티셔츠, 마우이 섬 시골 마을에서 단돈 1달러에 산 티셔츠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 영화화까지 된 덕에 가장 아끼는 티셔츠가 되었다는 일화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여름에는 오로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누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티셔츠 사랑은 애틋하면서도 각별하다. "티셔츠가 이 정도 있으면 여름이 와도 뭘 입을지 걱정할 일 없고 말이죠. 매일 갈아입어도 여름 한 철 내내 다른 걸 입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티셔츠는 사시사철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자유롭고, 느긋하면서도, 독특한 하루키의 일상과 닮아 있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만큼 디자인도, 색상도 다양한 티셔츠! 누구나 옷장 가득 차지하고 있는 패션 아이템일 것이다. 물론 하루키처럼 이렇게 수백 장의 티셔츠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옷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티셔츠들을 떠올려 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다거나, 좋아하는 공연의 기념품으로 구입한 티셔츠라던가, 해외 어느 여행지에서 산 것 등등 나 역시 입지 않고 모셔만 두고 있는 티셔츠들이 꽤 있다. 그리고 각각의 티셔츠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거기에 자신만의 취향을 수집하는 재미가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사랑한다면, 하루키만큼 이런저런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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