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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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작게나마 선행을 베풀었으면 베풀었지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으니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떠날 수 있어. 나는 적들에 대한 비난보다는 내 뒤에 남겨질 친구들에 대한 미련이 더 강한 것 같아. 혹여 나를 해치게 될, 당신과 내 아이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할 사람이 그 누구건 간에, 내가 그를 용서했듯 당신도 용서해 주길 바라.      - p.97, 피에트로 베네데티(41세, 가구공)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북부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201명이 죽음을 앞두고 취한 마지막 행동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동지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식과 작별 인사 등으로 600일이라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활동 기간 동안 투쟁했던 그들의 역할은 끝이 났다. 24세 주조공, 33세 회사원, 20세 정비공, 26세 공대생, 41세 가구공, 19세 직공, 27세 모자이크 세공사, 19세 농민, 18세 자동차 수리공, 21세 설계사, 23세 국문과 학생, 32세 전자공학 기술자 등등...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서 일하고,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이 책은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생애 마지막 편지를 한데 모았다.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이탈리아의 현대사도, 레지스탕스라는 것도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저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레지스탕스들의 편지이긴 하지만, 정치적 신념을 피력한 내용보다는 극한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글들이 대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도 아니었고, 우리가 알만한 그 어떤 행동에 대한 글도 아니지만, 그저 죽음 앞에 선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오랜 시공간을 거쳐 지금 우리에게 도달한 이 편지들은 그 자체로 심금을 울린다.

 

 

 

죽기 몇 분 전, 당신이 나로 인해 받게 될 크나큰 고통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써. 부디 나를 용서해 줘. 그리고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줘. 나를 위해 자비로운 주님께 기도하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줘.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해주고, 나 대신 매일 뽀뽀해 줘. 나를 위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 줘야 해. 가능하다면 나를 잊지 말고 변함없이 추억해 주길 바라. 그럴 수만 있다면 매일 밤 당신을 보러 올게. 꿈나라로 떠난 당신과 우리 아이들을 내가 지켜 줄 거야.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걸 잊지 마. 눈감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야. 내 영혼으로나마 키스를 퍼부으며          - p.467, 구에리노 스바르델라(28세, 인쇄 식자공)

 

마지막 순간까지 '앞으로의 세상은 보다 좋아질 거라고, 그것을 위해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축복할 일이라고' 의연하게 말했던 이도 있었고, '평생 어머니 곁에서 함께해 드리지 못하게 된 것을 부디 용서해'달라며 온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던 이도 있었다. 자신이 총살되기 단 30분 전에 써 내려간 편지 속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이들은 아내에게, 아이에게, 부모님에게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후회와 용서를 담고,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의 숙명을 받아 들이고,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끝까지 믿음과 인간성을 지켜낸다.

 

우리가 만약 파시스트의 손에 목숨을 잃기 직전이라면, 누구에게, 어떤 말을 남기게 될까. 조국의 영광과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들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비슷해질 것이다.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오래 기억해달라고, 내 몫까지 잘 살아달라고.. 이들이 남긴 사연들은 각자가 너무 다르지만, 처해있는 상황 때문에 또 너무도 비슷하다. 육체와 영혼을 포함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형이 집행되기 전 주어진 짧은 몇 시간 동안 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우리는 전혀 짐작도, 경험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책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책을 통해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잊어 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편지들의 주인공들이 실제로 우리처럼 숨쉬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표지 안쪽에 이 편지들을 쓴 이들의 직업이 기재되어 있다. 주조공, 회사원, 재단사, 막노동자, 의대생, 초등학교 교사, 변호사, 주부, 창고지기, 의사, 견습생, 경찰, 요리사 등등... 201명의 사람들을 잊어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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