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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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사를 해야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될까? 우린 낯선 집들로 북적이는 새로운 마을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두 이방인이 되겠지.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야.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어, 프레디. 그게 문제야. 마흔은 쉰이 되고, 곧 예순이 돼. 그러다 보면 좋은 병원 침상과 카테터를 잘 꽂아 넣는 간호사를 기대하는 날이 오겠지. 프레디, 마흔이면 이미 청춘은 끝이야. 뭐, 청춘의 끝은 서른부터라고 해야 맞겠지. 마흔이면 장난질을 그만둘 때가 된 나이고. 난 낯선 곳에서 늙고 싶지 않아.       p.83

 

세탁 회사에서 일하며 20년 동안 반복된 일상이라는 보호막 아래 평범하게 살았던 바튼 도스의 삶은 시 당국이 결정한 고속도로 확장 계획으로 인해 엉망이 되고 만다. 그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키우고 여행을 갖다가도 언제든 돌아오던 집과 평생 열심히 일해온 직장 모두 고속도로 확장 대상 지역에 포함되어 강제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장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기한을 일부러 넘겨서 회사에서 해가고 되고, 차일피일 이사 계획을 미루다가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별거에 이르게 된다. 이웃들은 거의 다 이사를 가 버렸고, 그에겐 떠난 아내의 흔적과 3년 전에 뇌종양으로 죽은 아들의 기억만 남았다. 바크만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고 총을 구입하고, 도로를 폭파시키겠다고 폭탄을 구하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안녕하십니까, 조만간 대형 크레인이 귀하의 집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저희는 귀하의 도시를 개선하고 있으니 이 멋진 행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점점 지쳐가는 동안 고속도로 확장 공사는 일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불만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급기야 바튼은 미래나 결과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기로 한다. 사실 그는 끊임없이 어쩌면 공사를 중단시킬 수도, 그래서 자신의 삶을 구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는 한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마치 미끄러지는 차 안에서, 아직 운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을 놓고 눈을 가려버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저씨도 아는 거라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자살할 생각이라고."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는데 전부 잘 되질 않네. 뭔가를 해보기엔 내가 너무 늙어서 그런가. 몇 년 전에도 일이 틀어진 적이 있는데, 상황이 안 좋아지긴 했어도 삶을 흔들어놓을 정도는 아니었어.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잘 극복하자 라는 마음으로 살았지. 그런데 내면이 차츰 무너져 내리는 게 느껴져. 넌덜머리가 나. 계속 그래."      p.304

 

70~80년대 당시 평론가들은 스티븐 킹을 저급한 장르 작가라고 저평가했고, 여기에 반발해 스티븐 킹은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습작 삼아 써 둔 작품들을 다듬어 발표했다. '바크만'이 한 번 더 '킹' 같은 지위를 획들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리처드 바크만의 이름으로 <Rage>, <롱 워크>, <로드워크>, <The Running Man>, <Thinner> 다섯 권이 출간되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이 실험은 한 서점 직원에 의해 발각되어 중단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발각되지 않았다면 <미처리>도 리처드 바크만의 이름으로 나올 예정이었다고. <롱 워크>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리처드 바크만의 작품이 이번에 만난 <로드워크>이다. 현재 영화 「그것」의 무시에티 남매가 각색 및 제작으로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이 영화화할 예정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이 작품에 대해 '인간이 가진 고통이라는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을 잘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갑자기 나타나 '여기로 도로가 지나가야 됩니다. 일 년 내에 이사 나갈 새집을 찾으세요'라고 말하면 그걸로 끝인, 자본의 이익 논리 앞에서 힘없는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물론 누군가는 정부에서 결정한 정책이니 군소리 없이 명령대로 이행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조금 번거롭지만 시에서 주는 보상금을 받고 다른 도시로 가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내쫓기고, 소중한 기억들을 잃어 버리게 되는, 세상이 끝나버리는 것 같은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순간에 자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 딸려 있던 모든 것이 세상 끄트머리 너머로 쓸려 나가버리고 나면, 뭐가 남을까. 그렇게 삶이 흔들리고, 내면이 무너져 내린 한 남자의 분노가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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