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류쯔제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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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어떻게 믿어?"
그녀는 그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을 뿐, 그가 정말로 세상에 있는 사람인지는 의심하지 않았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지만 그녀는 이미 질투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믿으면 진실이고, 믿지 않으면 거짓말이지."
광둥 억양이 짙은 저음의 목소리가 바람결처럼 휴대폰을 타고 들려왔다.     p.24~25

 

마추이추이는 양부모 밑에서 자라 집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 부동산 투자의 고수가 되어 '마 언니네 집'이라는 유명한 게스트 하우스 체인을 운영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첫사랑 첸웨이하오와 사귀다 헤어지고, 크리스마스 때 만난 남자 딩야둥이 갑자기 사라진 뒤, 온라인 연애로 허톈멍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온라인으로만 대화를 나누며 사랑에 빠진 그들은 신혼집을 구하는 문제를 의논하기 시작했고, 허톈멍이 그녀 대신 집을 보러 다니다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서둘러 계약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하지만 마추이추이가 계약금을 보내자마자 허톈멍은 사라진다. 물론 그녀에게 그 사건은 메신저의 대화창 하나를 끄고 친구 한 명을 삭제하고, 은행 잔고에서 이삼백만이 원래 없었던 셈 쳐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기를 당하고 난 뒤, 뭐든 다 가짜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이 이야기는 <마 언니네 집>이라는 소설속 내용이다. 이 작품은 문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신비주의 소설가 중링이 대필 작가인 천량량에게 의뢰한 세 번째 작품이다. 중링은 등단한 지 30년이 되도록 만났다는 사람이 없고, 인터넷이든 신문이든 잡지든 그 어느 곳에서도 사진을 찾을 수 없는 신비주의 작가이다. 중링은 매일 열심히 장편소설의 줄거리를 쓰고 적당한 대필 작가를 골라 그 줄거리를 가지고 소설을 완성하게 했다. 그녀는 현재 중국과 대만을 가로 지르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천량량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녀와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 언니네 집>은 중링과 천량량이 함께 의논해가며 만들어지는 작품이었는데, 천량량 역시 아직까지 중링의 정체를 알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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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물건 앞에 '내'라는 글자를 붙이기 시작하면 마음 속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내 이름, 내 계좌, 내 아이디, 내 아들, 내 차, 내 집, 내 배우자. 그것들이 보이지 않으면 막막하고 불안하고, 그것들을 빼앗길까 봐, 침해받을까 봐 두려워진다. 사기 조직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빈틈이다. 그들은 이 틈을 틀어쥐고 우리에게 접근한다. 엄마 나 납치됐어. 당신의 개인정보가 도용됐습니다. 고객님의 계좌가 유출됐습니다... 몸값이든 보증금이든 무슨 돈이든 어쨌든 당신의 돈을 당신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p.192

 

이 작품은 신비주의 소설가 중링과 대필 작가인 천량량의 이야기와 함께 이들이 쓰는 소설인 <마 언니네 집>에 등장하는 마추이추이의 시점과 체계적인 사기 조직의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진행되고 있다. 극중인물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작가’ 그리고 ‘이야기 밖의 실제 인물’이라는 다중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이라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사랑을 빙자한 사기 사건이라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는 이 세 겹의 구조를 통해서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진실과 거짓,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들어 준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류쯔제는 대만 문단에서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작가이다. 류쯔제는 2011년 대만의 한 37세 여성이 CIA 국장을 사칭한 남자에게 거액의 온라인 사기를 당한 로맨스 스캠 사건을 보고 사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사건에서 류쯔제의 시선을 끈 것은 아무도 사기꾼을 잡아 처벌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사기를 당한 여성이 스스로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연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연인이 보내준 결혼반지를 보여주며 자신의 사랑이 진짜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장면을 보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류쯔제는 SNS를 이용한 연애 사기 범죄를 소재로 하여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한바탕 사기극을 만들게 된다. 특히나 이 작품은 독특한 다중 액자 구조로 거짓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여겨지게 만든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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