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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ㅣ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평점 :
그의 목소리는 나긋했고, 부드럽게 박자를 맞추어 움직이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이 남자는 정말이지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온화한 야만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표현이 딱 맞는다. 위험하고, 거침없고, 반항을 용납하지 않지만 동시에 너무나 자상하고 섬세한 남자. 이 모든 점이 혼합된 이 남자는 무섭지만 매혹적이었고, 그래서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p.87
라우라는 호텔 관리직으로 열심히 일하다 겨우 스물아홉에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세일즈 매니저 자리에 오르자마자 돌연 일을 그만둔다. 일에 대한 열정이 싹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인 마르틴과 함께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한편 시칠리아에선 마피아 가문의 수장인 마시모가 사업을 위해 공항을 지나가다가 한 여자를 보고 미친 듯이 눈을 깜빡여본다. 그는 5년 전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의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되었다. 나의 미스트리스라는 호칭도 붙였을 정도로 환상 속에서 매일 같이 등장하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 여자야. 바로 저 여자라고."
눈, 코, 입술... 환상 속 모습 그대로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마시모는 부하들에게 당장 그녀에 대해 알아오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라우라에게 접근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게 된다. 365일이라는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뭐든 할 테니 그 동안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만약 다음해 생일까지도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미련없이 보내주겠다고 말이다. 라우라는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떨쳐 버리고 싶지만, 믿었던 남자 친구는 말다툼 후에 다른 여자와 함께 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장 돌아가야 할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사실 자신은 잃을 게 없었다. 게다가 마리모라는 이 아름다운 남자는 완벽한 그녀의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그는 오만하면서도 온화하고,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와 자상함을 갖춘데다, 누구든 지배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자기가 뭘 원하는지 항상 아는 그런 남자였다. 결국 라우라는 마시모가 내견 기묘한 조건을 받아 들이고 그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점점 스스로의 의지로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나는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올가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 마침내 이야기를 끝낸 나는 주머니에서 약혼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젖히고 한숨을 쉬었다.
"이게 그 증거야. 이제 너한테 숨기는 거 없어."
올가는 충격받은 얼굴로 나의 반지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와우, 썅, 네가 해준 이야기 무슨 스릴러 소설 같아. 그것도 19금 딱지 붙은 스릴러. 그럼 지금 마르틴은 어떻게 됐어" p.355
202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화 <365일>의 원작 소설이다. 이 시리즈는 <365일>, <오늘>, <또 다른 365일>로 3부작이다. 해당 시리즈는 폴란드 내에서만 15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2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고 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뛰어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로맨스라는 홍보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 '그레이 시리즈'보다 더 노골적이고, 더 대담하고, 더 스케일이 있는 작품이었다. 대학생부터 엄마들까지, 전 세계 모든 연령의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유는 대부분의 로맨스물에서 보여지던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의 주인공 라우라는 자신의 욕망에 매우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만큼은 굉장히 뛰어난 이야기라서 결코 가볍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작품이었다.
작가인 블란카 리핀스카는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개방성이 지나치게 결여되어 있다고, 사랑의 다양성 측면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로맨스물에서 수동적인 성격으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확 바꾸어 놓았다. 능동적이고, 당당한 성격의 라우라는 그 어떤 로맨스물에서도 보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이니 말이다. 파격적이고 위험하고 도발적인 이 작품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로 놀라움을 안겨줄 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