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근처에서 장을 보고,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 이런 '생활'을 외국에서도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저절로 드러나는 게 있지 않을까? 그곳 사람들과도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적지는 상관없다. 생활이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내가 그냥 나로 존재하기만 하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진짜 모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p.25~26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은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되었지만, 띠지에 실린 작가의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 번 보면 절대 잊어 버릴 것 같지 않았다. '아프로헤어'라니.. 흑인도 아니고, 개그맨도 아닌 일반인이 이런 헤어스타일을 한 것은 처음 보았으니 말이다. 아사히 신문의 인기 칼럼니스트이자 편집위원이었던 그녀는 50이라는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퇴사한다. 그 이야기를 쓴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은 국내에서도 방송이 된 적이 있으니 아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시작된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생활’로 이유 있는 ‘전방위 미니멀 라이프’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라는 책을 통해 소개되었다. 그리고 퇴사가 가져온 밥상의 변화와 음식의 미니멀리즘에 대해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이야기했고, 이번 책은 국내에 소개되는 그녀의 네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프랑스 리옹에서 시도해본 '자취 생활'이야기를 들려준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어릴 적부터의 꿈을 퇴사 후에 실현시켜 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 시작이었다. 프랑스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의 생활을 뒷바라지해줄 회사도 이제 없고, 오로지 혼자, 게다가 거주할 집조차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다 아무런 준비 없이, 평소의 자신 그대로 훌쩍 떠나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53세의 그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뻔뻔스럽게, 달랑 몸둥히 하나 들고, 말도 안 통하는 유럽으로' 날아간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매일 아침의 카페 수행. 늘 앉는 스툴 의자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살금살금 안족 칸막이 자리에 앉자, 그 미인 로커 종업원이 "마담, 여기 비었어! 와서 앉아요!" 하며 손짓한다. 너, 넘 기뻐..... 게다가 이젠 주문도 받지 않고 확인 작업도 없이, '프티 크렘'을 테이블 위에 놓아준다(눈물). 아아, 나, 해냈어요! 드디어! 동양에서 온 이상한 아프로헤어가 완벽하게 단골로 받아들여졌다고요!     p.163

 

비행기가 두 시간 반이나 지연되어 밤늦게 도착한 리옹 공항은 너무나 한산했고,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는커녕 사람 하나 없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 주인과 연락할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다 겨우 만나 낡은 집에 도착하며, 저자의 리옹 '생활'이 시작되었다. 관광지가 아니라 평범한 프랑스인들이 평범하게 사는 지방도시의 주택가에 머물며 시장을 봐서 식재료를 구비하고, 평소처럼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일상을 보내기 시작하지만,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언제나 생각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녀는 평소에도 해외여행이 무척 불편했던 사람이다. '살아보기'는 커녕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고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이드북과 잡지를 열심히 읽고 막상 도착해보면 매번 기대와 달랐고, 화려한 요리 사진에 잔뜩 환상을 품고 찾아가보지만 대체로 생각만큼 맛있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사람이 프랑스 리옹에서 무작정 자취 생활을 시작했으니 순탄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원래 모든 일은 예상과 달라지는 지점에서 더 재미있는 법이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길에서 얻은 인생의 비밀이 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자유롭고, 엉뚱하고, 과감한 그녀의 14일 동안의 여행기가 우당탕탕 펼쳐진다. 14일 동안 리옹에서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보내는 여정은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여행이 사라진 요즘,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는 돌아올 여행의 시간을 기다려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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