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옥으로 가기 전에 ㅣ 황선미 선생님이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
황선미 지음, 천루 그림, 이보연 상담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평점 :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엄마한테는 지금의 나, 학교, 반친구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게 그저 육상 선수가 출발 전에 다리를 푸는 것에 불과하다.
엄마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애들이 상대를 만만하게 보는데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쯤 아실까. 아들이 지옥으로 가는 문 앞에 서 있는 심정이라는 걸. p.56
대사관 일을 하는 아빠 때문에 프랑스에서 2년을 살다가 돌아온 장루이는 기존에 다니던 사립 학교로 전학을 앞두고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사립 학교에 딸린 유치원부터 프랑스로 갈 때까지, 그러니까 열 살 때까지 장루이는 유진이와 그 무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다. 장루이는 엄마에게 다시 사립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고도 했고, 유진이가 자신을 왕따 시켰다고 털어놓기까지 했지만, 엄마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이다. 친해지면 된다고,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다른 애도 아니고 대사님 손자이니 장난이 좀 심할 수도 있다고. 사립 학교로의 전학이 장루이에게는 지옥으로 가는 문처럼 여겨졌지만, 엄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그저 사립 학교에서 잘 적응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임시로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친구 없이 겉돌기만 하던 장루이는 조금씩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점점 더 사립 학교로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진다. 자신에게는 절박한 문제가 왜 엄마에게는 고작 어리광으로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 싫어져 버린 장루이는 어른이 되면 집을 나가서 마음대로 하고 살겠다고, 절대 엄마가 바라는 외교관이나 국제 변호사 따위는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어찌되었든 어른이 되려면 까마득한 날들을 거쳐야 했다. 하루하루가 절망적인 날들, 여기도 저기도 지옥 같은데, 도대체 나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고 스스로를 먼지 같다고 느끼는 장루이는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자, 과연 장루이는 사립 학교로의 전학을 피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다면 이제 당당히 유진이와 그 패거리에게 맞설 수 있게 될까.
각오를 단단히 하고 들어갔는데 엄마가 너무 침착했다. 여전히 딱딱한 얼굴이지만 야단도 잔소리도 없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학 날짜가 앞당겨졌어. 다음 주부터야."
기운이 쭉 빠져 버렸다.
어차피 세상은 어른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무리 딴짓을 해도 치러야 할 대가는 고스란히 남는다. 나 혼자 겪어야 할 대가. p.102
동화작가 황선미가 어린이 주변을 둘러싼 인간관계를 동화로 쓰고, 이보연 아동심리 전문가가 상담을 덧붙인 신개념 관계 동화, 시리즈 마지막 다섯 번째 책이다. <건방진 장루이와 68일>, <할머니와 수상한 그림자>,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나에게 없는 딱 세 가지> 그리고 이번 신작 <지옥으로 가기 전에> 이다. 동화 한 편 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내용을 토대로 상담과 심리 치료까지 이끌어 내는 책이라 대단히 흥미로웠다.
부모와 아이의 갈등은 어느 가정에서나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그 내용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어른이 아이의 마음을 읽는 것도 어렵고, 아이가 어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도 쉽지 않다. 분명히 싫다고 했는데, 엄마는 왜 나를 무시하는 걸까, 아직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열두 살 작은 일탈과 소심한 반항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왜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어긋나는 걸까. 책의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는 '관계 수업'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를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사이라고 말한다. 늘 내편이어야 할 것 같은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무시한다고 느끼는 사춘기 아이들의 감정과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잔소리와 참견을 하게 되는 부모가 마주하는 실망과 걱정으로 인해 갈등은 피할 수가 없다. 부모는 왜 그러는 것인지, 부모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명이 되어 있어 참 좋았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도, 이제 막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초등 아이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